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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공채 대비 인문학 노트] 내가 유성룡이었다면? [한국사/인문학/경제칼럼] 조회수 : 4939

<2014 하반기 GS리테일 2차면접 문제>

내가 유성룡이었다면?





▷QUESTION


역사 인물 중 ‘내가 OOO이었다면, OOO했을 것이다’에 대해 이유와 함께 말해보세요.(GS리테일 2차면접 기출문제)


▷SOLUTION


임진왜란이 끝나고 유성룡은 징비록을 저술해 책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 유성룡이 징비록을 쓴 이유는 당시 끊이지 않았던 전락 때문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40년 만인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했다. 


이에 유성룡은 징비록을 저술해 ‘미리 준비해서 후환을 경계하라’고 했지만, 조선 권력자들은 금새 잊어버리고 한반도를 또 다시 전쟁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그리고 300년 뒤 또다시 일본의 손에 병합 당한 것이 조선의 역사다.


유성룡은 명(明)의 도움과 수군절도사 이순신의 지략으로 임진왜란을 가까스로 극복했지만 그 전쟁이 끝나는 날 관직에서 파직 당한다. 그리고는 고향으로 가서 후학을 키우는 데 전념하다가 일생을 마친다. 


임진왜란은 우리에게 뼈아픈 고통을 남기고, 희대의 영웅들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사정을 다 알고, 다시는 임진왜란과 같은 전란을 겪지 말아야 한다고 증언을 한 것이 징비록인데 왜 후세들은 그것을 자기의 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내가 만일 유성룡이었다면 무엇을 했을까?


유성룡은 문인 출신이지만 전시에는 군을 지휘했다. 그는 부족한 군사를 확보하기 위해 과감하게 노비들을 면천시켜 군사로 확보했는데 조선은 신분제도의 붕괴를 우려해 전쟁 후 면천돼 장교가 된 이들 노비를 파직하거나 모함해 쫓아냈다. 남존여비 사상도 더욱 강화됐다.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더욱 망하는 구조적 모순을 갖게 된 것이다. 


유성룡과 이순신은 같은 남인 계열이었고, 유성룡의 추천으로 이순신은 수군절도사에 발탁됐다. 이순신 역시 유성룡과 함께 충(忠)이라는 유교의 가치를 임금에게만 두지 않고 백성들에게 두어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당시 주류 세력이었던 노론들은 그들(유성룡과 이순신)을 배척했고 혁신적이었던 이들 제도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만일 유성룡이었다면 임진왜란이 끝나는 시점에서 다시는 전란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국방제도의 정비할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먼저 도망친 왕(선조)을 교체하고, 군사력을 정비하고, 올바른 장수를 선임해 양반중심 사회를 백성 중심 사회를 전환할 것이다. 


그 시기는 선조가 서울에 입성할 때여야 하는데 이때 광해를 왕으로 옹립해 명(明)과 왜의 종 노릇을 한 역적을 처단하고, 국제 정세에 맞는 대외정치(중거리정책)를 강화해 새로운 조선역사를 써나갈 것이다. 


징비록에는 유성룡의 이기는 전략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천마디 말이나 만가지 계략이 다 필요 없고 오직 뛰어난 장수 한 사람이 중요하다. 거기에 조조의 3가지 요소(지형이용・군사기강・우수한 병기)가 누락되지 않고 더해진다면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다.’


글 이동우 롯데중앙연구소 HR Leader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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