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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Q열전] 그림판 하나로 뚝딱, 포토샵 따위 개나 줘버려~ [꼴Q열전] 조회수 : 73931

[꼴Q열전] 

포토샵 따위 개나 줘버려~ 

그림판 작가 ‘블루샤크’ 이경준 


△ 사진 = 서범세 기자 


무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상어 ‘블루샤크’.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귀여운 두 다리로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이불 밖을 무서워하는 귀염 터지는 캐릭터다. 하지만 그냥 귀엽기만 했다면 이렇게 화제가 되지는 않았겠지. 블루샤크가 유명해진 것은 천하디 천한 ‘그림판 출신’이기 때문이다. 



블루샤크를 만든 이경준(25) 작가는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프리랜서다. 온라인게임 ‘리그오브레전드’ 대전 기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피지지(OP.GG)의 로고 디자인이나 일러스트 작업 등을 진행하며, 동시에 그가 만든 ‘블루샤크’ 캐릭터 작업에도 몰두하고 있다. 그가 다른 작가와 차별화되는 것은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등의 툴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그림판’으로만 작업한다는 것.  


“제가 뭔가를 배우는 걸 안 좋아해요. 다른 툴을 사용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그림판으로 그리는 거죠. 그림판 작업의 장점이요? 사람들에게 그림 보여주고 ‘이거 그림판으로 그렸어’라고 말하면 대단하다는 칭찬 듣는 것. 그것 말고는 하나도 없어요. 그냥 사서 고생하는 거예요.” 


△ 메리샤크마스



포토샵 못 다루는 시각디자인학과생은 처음이지? 

이경준 작가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으나, 안타깝게도 미대를 갈 정도의 실력은 없었다. 기껏해야 교과서 표지에 끼적인 낙서로 친구들의 눈길을 끄는 정도. 배움에 큰 뜻이 있는 것도 아니라 대학의 전공 선택도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다. 이름이 그럴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이 문과라는 것을 망각한 채 ‘스마트앱개발학과’에 진학했는데, 입학 후 이과 위주의 학과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여긴 아니다’ 싶은 생각이 온 몸을 휘감았다. 탈출을 결심한 그의 눈에 마침 시각디자인 학과가 들어왔다. 그림에 조금은 재능이 있었고, 한때 웹툰 작가를 꿈꾸기도 했던 그에게 딱 어울리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각디자인이 뭔지도 잘 모르고 덜컥 전과를 했죠. 저희 학교가 2년제라 단기간 내에 많은 것을 배우다보니 수업이 정말 힘들더라고요. 과제도 많고 공모전도 많았어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등의 툴을 전혀 다루지 못한다는 거였죠.” 


초밥상어



스마트앱개발학과에서의 생활은 양반이었다. 과제를 해야 하는데 기본적인 툴 자체도 다루지 못해 진땀을 뺐다. 손으로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컴퓨터로 그림을 그려야하는데,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그나마 한줄기 빛이 되어 준 것은 어느 컴퓨터에나 다 있는 ‘그림판’이다. 이경준 작가는 명색이 시각디자인학과생임에도 불구하고 초딩도 다룰 줄 안다는 그림판으로 과제를 해야만 했다. 교수님은 어딘지 모르게 허접스러운 그의 과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림판 작업이라는 것을 알고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도 저기도 적응에 실패한 학교 따위 안다니겠다며 도망치듯 군대로 떠났다. 


△ 사진 = 서범세 기자


잘 만든 캐릭터 하나, 열 연금복권 안 부럽다

무념무상으로 군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덧 전역일이 가까워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때마침 여친에게도 차인 터라 이경준 작가는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불타올랐다. 전역 후 뭘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의류 브랜드를 론칭해야겠다는 결론을 내게 된다. 브랜드를 만들려면 그럴싸한 로고부터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슥슥 그려 만든 것이 ‘블루샤크’였다. 


그림판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이미지는 단순해졌다. 평소 좋아하던 동물인 상어를 그리고 단색으로 채색한 뒤 두 다리를 붙여 완성. 처음에는 검정색으로 칠해 블랙샤크를 만들었는데, 상표 등록이 돼있어 어쩔 수 없이 블루샤크로 살짝 변형을 줬다.  


“페이지를 만들고 팔로워를 늘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뭘 팔아도 팔리니까요. 의류브랜드라고 하기엔 로고 하나밖에 없어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디자인 SNS로 시작하기로 했어요. 그동안 학과에서 작업했던 것을 하나 둘 올리기 시작했죠.” 


△ OP.GG 로고 작업물


2014년 중반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든 그는 타이포그래피, 대학 때 했던 과제물 등을 올리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보려 했다. 반년 정도 꾸준히 운영해 만든 팔로워 숫자가 1천여 명. 생각보다 낮은 숫자에 고민하던 무렵, 온라인게임 ‘리그오브레전드’ 대전 기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피지지(OP.GG) 운영자가 연락을 해왔다. 


이경준 작가의 작업물이 마음에 든다며 오피지지(OP.GG) 로고 디자인을 의뢰한 것. 그림판 작가인 그의 재능을 알아봐준 단 한 명의 고객이 생긴 것이다. 그가 오피지지(OP.GG)의 로고 디자인을 하는 작가라는 입소문이 나자 게임 유저들이 그의 페이지를 찾기 시작했고 좋아요 숫자도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 심펑


하지만 페이지 인기와 달리 주머니 사정은 늘 씁쓸했다. 이경준 작가는 페이지 운영과 동시에 동대문 시장 도소매일, 가구 디자인, 인테리어 영업 등 별별 일을 다 하며 돈벌기에 매진했다. 월 200만 원 이상 벌고 싶은 욕심에 고소득 일자리만 찾아 다녔는데, 그러다 결국 다단계 회사까지 접한 그는 ‘세상에 믿을 놈은 나 말고는 없다’는 결론을 내게 된다. 그는 모든 알바를 접고 자신의 그림 실력으로 돈을 벌 궁리를 하게 됐다.   


“오피지지(OP.GG)의 로고 디자인 외에는 다른 외주는 받지 않았거든요. 다 재능기부 형식으로 무료로 만들어줬죠. 하지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부터는 다른 외주 작업을 모두 받았죠. 페이지도 재정비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올리는 작업물은 의미 없다고 생각해 그런 것을 빼고 나니 블루샤크 캐릭터만 남더라고요. 요즘 캐릭터 시장이 워낙 인기잖아요. 블루샤크를 잘 키우면 나중에 연금 못지않게 쏠쏠하겠다 싶었죠.”


△ 캡틴 샥


그림판 작업 노하우 전수? 그 시간에 포토샵이나 배워라

온갖 캐릭터가 판치는 이 시국에 그는 듣보잡 캐릭터 블루샤크를 알리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 이경준 작가가 떠올린 것은 유명 캐릭터에 살포시 업혀가는 것. 그는 블루샤크에 마블, 디즈니 등의 유명 캐릭터를 입히고 상대의 의사와 상관없는 나 홀로 콜레보레이션을 시도했다. 예상대로 사람들의 반응은 후끈했고, 휴대폰 케이스로 제작하자는 연락도 여러 곳에서 받게 됐다. 


캐릭터 이름을 알리고 나서부터는 순수 블루샤크로만 승부를 내는 중이다. 지난 7월에는 카카오톡에 블루샤크 이모티콘이 출시됐고, 휴대폰 케이스, 가방, 의류, 보조배터리 등의 제품도 다양하게 출시됐다. 내년 초에는 블루샤크 페이퍼토이도 출시 예정이다. 


△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판매 중인 블루샤크 캐릭터



이경준 작가는 지금까지도 그림판 작업으로 캐릭터를 그리고 있지만 초기에 비해 스킬이 업그레이드 됐다. 그림 사이즈를 굉장히 크게 해 그림판 특유의 깨지는 현상을 줄였다. 타블렛 없이 마우스로 그림을 그려 삐뚤빼뚤 했던 선도 이제는 섬세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포토샵 기술도 ‘기본’ 수준에서 ‘상기본’으로 약간 올라갔다고 한다. 사이즈 조절 등의 간단한 작업 정도는 이제 포토샵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여전히 그림판 작업은 힘들어요. 포토샵은 레이어가 있잖아요. 앞 뒤 그림이 구분돼 있어, 하나를 지워도 다른 것은 그대로 남아있죠. 하지만 그림판은 하나의 그림이라 조금만 실수하면 싹 다 지워지죠. 그림 작업할 때마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끔 그림판으로 그리는 노하우를 알려달라는 사람도 있지만 안 알려주죠. 제 노하우를 뺏기는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 시간에 포토샵 배우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에요.” 


△ 화투 비광 샥


하지만 정작 이경준 작가는 포토샵을 배울 생각이 전혀 없다. 배우는 게 너무 싫다는 그는 ‘포토샵 배울 시간에 그림판 작업 10개를 하겠다’는 고집이다. 나중에 한계가 왔을 때는 포토샵을 할 수 있는 직원을 채용하겠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돈을 많이 벌어야한다. 


“저는 물질만능주의자에요. 돈 쉽게 버는 사람이 제일 부럽죠.(웃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알바할 때에 비하면 지금도 많이 여유로워진 편이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봐요. 의류브랜드 론칭의 꿈도 아직 버리지는 않았답니다. 블루샤크 캐릭터가 잘 되면 다른 해양 동물 시리즈도 계속 만들 예정이고요. 앞으로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다 시도해볼 거예요!” 


글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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