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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Q열전] 원′익′이는 치′킨′이 먹고 싶었을 뿐이고! 일러스트레이터 익킨 [꼴Q열전] 조회수 : 5105

[꼴Q열전] 일러스트레이터 익킨

이는 치이 먹고 싶었을 뿐이고 



스물넷의 평범한 혹은 평범하지 않은 청년 익킨(본명 이원익, 24). 그는 스스로 ‘작가’라는 말을 쓰는 것이 부끄럽다며 자신을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SNS에서 ‘익킨’이라는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짧은 만화 속에 허를 찌르는 메시지를 담아내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사회를 풍자하는 그림도 있고, 인간관계나 사랑의 감정에 대해서도 그리고 있어요. 한컷 혹은 10장 이내의 그림에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를 담죠. 제 그림은 스킬로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머리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잘 그린다’고 감탄하는 것보다 ‘공감된다’, ‘위로된다’고 느끼는 분들이 더 많아질 수 있길 바라죠.” 


모든 것의 시발점은 의외의 곳에서

익킨이 SNS에 그림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2년. 대학교 공부가 너무도 하기 싫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때였다. 마침 그의 손에는 대학교 입학하며 구입한 타블렛이 있었다. 


“뭘 배우는 곳인지도 모른 채 그저 성적에 맞춰 ‘세라믹 디자인과’에 입학했어요. 도예 디자인을 한다고 하기에 그림을 그릴 일은 별로 없겠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혼자 취미삼아 그림을 그릴 생각으로 타블렛을 구입했었거든요. 역시나 학과 수업에서는 전혀 그림을 그릴 일이 없었고요.(웃음)” 


그는 고등학교 때 그저 미술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입시미술 학원을 열심히 다녔다. 어느 대학을 갈까, 졸업 후에는 어떤 곳으로 취업을 할까 등의 고민은 전혀 없었다. 마치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면 그것이 행복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학과 선택을 할 때도 고민은 없었고, 뭘 배우는지는 모르지만 성적에 맞는 ‘세라믹 디자인’을 선택한 것이다.  


도예에 재능이 있었다면 참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흙을 만지는 재주는 없었다. 동기뿐만 아니라 후배들보다도 실력이 뒤떨어졌다. 자연히 학과 공부는 점점 더 멀리하게 됐다. 친구들과 하하호호 놀러 다니고 진득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만이 대학생활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 CELTICS


“사실 대학도 군대 다녀와서 자퇴할 생각이었거든요. 꼭 졸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군 면제를 받게 돼 공으로 2년을 얻게 됐죠. 부모님께서는 시간이 생긴 김에 졸업을 하는 게 어떠냐고 하셨는데, 그 말에 은근히 설득되더라고요. 그래서 학교를 계속 다니게 됐고, 그러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타블렛에 익숙해질겸 그는 친구들 얼굴도 그려보고, 농구를 좋아하는 취향을 담아 멋진 흑형의 모습도 그리기 시작했다. 한 번 펜을 잡으면 5~6시간씩 한 자리에 앉아 영혼을 담아낸 근사한 작품을 완성해냈다. 그렇게 만든 결과물을 혼자 보기 얼마나 아까웠을까. 좋은 것은 함께 봐야한다는 생각으로 그는 SNS에 자신의 그림을 공개했다. 그렇게 만든 것이 페이스북 ‘내가 그린 흑인 그림’ 페이지였다. 


마치 사진처럼 정교한 그림에 사람들은 감탄하며 ‘잘 그린다’, ‘신기하다’ 등의 댓글을 달며 응원했다. 그는 칭찬과 호응에 신이나 더더욱 그림 그리기에 매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열정과 달리 사람들의 반응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그러들었다. 마치 영혼없는 방청객같은 호응이었다. 그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모든 문제의 시발점


“한 번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어요. 그냥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죠. 모든 것의 시발점은 가슴 속의 응어리에서 나온다는 의미를 담은 한 컷의 만화같은 그림이었죠. 딱 10분 만에 완성했던 것 같아요. 그걸 SNS에 올려봤는데 반응이 놀라웠죠. ‘공감간다’, ‘재미있다’, ‘센스있다’ 등 이전의 그림에서는 전혀 볼 수 없던 댓글이었어요. 5~6시간 공들여 그린 흑형의 그림보다 10분만에 완성한 그림이 더 많은 인기를 얻으니 왠지 모를 서운한 마음도 들더라고요.” 


하지만 서운함은 잠시 뿐, 그는 냉정한 마음으로 흑형과의 이별을 선언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짧은 만화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로 결심한다. 


흑형과 이별하고 치킨으로 새 인생을 찾다 

페이지 이름도 더 이상 ‘내가 그림 흑인 그림’을 사용할 수 없었다.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기로 한 그는 어둠이 가득한 밤, 컴퓨터 앞에 앉아 고뇌에 빠졌다. 밤이 깊어갈수록 머리와 위장은 텅 비워졌다. 배고픔이 뇌를 장악하며 그의 머릿 속에는 그저 ‘치킨 먹고 싶다’만 가득해졌다. 


“평소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치킨이거든요. ‘치킨 먹고 싶다’, ‘치킨 먹고 싶다’ 생각하다가 이원익의 ‘익’과 치킨의 ‘킨’이 만난 익킨이 번뜩 생각나더라고요. 그날 치킨은 먹지 못했지만, 익킨이라는 이름을 얻었어요.” 


그렇게 2013년, ‘익킨’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난 그는 ‘익킨’ 페이지를 만들어 하루에 2~3장의 그림을 꾸준히 올렸다. 마침 방학 중이라 시간도 많아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아이디어 고갈의 벽을 만나게 될 때면 이틀에 한 번 꼴로 그림을 올리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그림을 쉬어본 적은 없다.  


△ -아저씨 봄이 오고 있어요 ! -꼬마야 똑바로 앉으렴.


익킨은 늘 가는 단골 카페의 같은 자리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편이다. 책도 많이 읽겠다 싶었지만 평생 책 한 권을 끝까지 본적은 없다고 한다. 심지어 만화책도 잘 읽지 않는 그다.  


“그냥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래서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죠. 친구들과 있을 때는 편하게 대하지만 이성이나 어른들 앞에서는 말수가 없어져요. 그래서 친구들은 처음 제 그림을 보고 ‘네가 이런 걸 그린다고?’하며 놀랐죠.(웃음)”


평소에는 그냥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던지던 친구가 SNS에서는 진지열매를 100만개 먹은 듯 심오하고 감성적인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그리니 친구들은 약간의 문화충격을 받기도 했다. 평소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며 혼란에 빠졌을 정도. 하지만 3년간 꾸준히 진지한 그림을 그리는 그를 보며 이제는 ‘좋다’ ‘잘한다’ 격려하고, 익킨의 이중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한다.  


재미없는 도자기 수업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익킨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2015년 11월에 그린 ‘흙수저’ 그림 때문이다. 당시 흙수저라는 단어는 사회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던 말이었다. 그는 흙수저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다가 남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금이나 은은 뜨거운 불에 녹지만 흙은 불 속에서 더욱 단단한 도자기로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을 떠올린 것. 


그는 그 생각을 짧은 만화로 표현했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 공감하고 또 위로받았다. 덕분에 TV 뉴스에도 3초간 출연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 흙수저 일러스트 중 일부


“학교에서 도자기를 배워서인지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장 핫한 반응을 얻은 작품이었죠. 동시에 악플이 가장 많았던 것이기도 해요. 사실 제 작품에 달리는 댓글은 대부분 훈훈한 내용들인데, 그때는 기사도 나고 여기저기 그림이 퍼지다보니 나쁜 얘기도 많아지더라고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흙수저 그림으로 인지도가 높아지며 지난해 말에는 페북 페이지 좋아요 숫자 10만을 달성할 수 있었다. 가볍게 볼 수 있는 개그소재의 그림이나 스토리는 아니지만 의미있고 뼈있는 메시지와 그림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것이다. 현재 익킨 페이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16만이 넘을 정도다.  


△네 혓바닥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지


“처음 페이지를 만들 때 농담 삼아 사람들에게 ‘좋아요 10만을 만들겠다’고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지난해 말에 정말로 10만이 넘었어요. 그걸 보면서 저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좋아하더라고요. 후배 한 명은 10만이 넘었다며 저에게 치킨을 한 턱 쏘라고 해서 얼결에 치킨까지 샀어요.” 


익킨으로 SNS에서 유명세를 타며 이름을 알렸지만 안타깝게도 수입은 크게 늘지 않았다. 간간히 외주 작업 제의가 들어오긴 했지만 정기적인 수입은 없었던 상황이다. 그동안은 대학생이라는 울타리가 있어 괜찮았지만 올해 초 졸업을 하면서 부터는 돈벌이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하게 됐다. 


“졸업하고 얼마 안돼 좋은 기회가 생겨 회사 생활도 잠시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최근에 그만뒀죠. 익킨으로 활동한지 3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많이 지쳐있던 것 같아요. 저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보다 더 불행한 감정을 가져야한다는 압박이 있어요. 그래서 계속 안 좋은 생각을 하면서 저를 깎아내리는 일을 반복했죠. 그러다보니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더라고요. 고민 끝에 잠시동안 익킨이 아닌 이원익의 생활을 하며 휴식 기간을 갖기로 했어요.”


△쉼표 다음엔 두 번째 문장이 있으니까, 걱정말고 쉴 땐 쉬어도 돼


휴식기를 갖기로 한 익킨은 현재 주 2회만 그림을 올리며 남은 시간에는 입시미술학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까지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휴식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내년에는 뭘 해야 할지 정하지 않았지만 SNS의 틀에서 벗어나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오프라인이나 다른 플랫폼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보려고요. 오래 쉬는 스타일이 아니라 지금도 익킨이 아닌 이원익을 삶을 사는 게 조금은 죄책감이 느껴져요. 내년에는 더 활발히 활동해야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글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익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