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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Q열전] 쓸데없이 고퀄리티, 나노드로잉 작가 심현대 [꼴Q열전] 조회수 : 11169

[꼴Q열전] 

쓸데없이 고퀄리티, 나노드로잉 작가 심현대  


‘그림 공대생’으로 SNS에서 화제를 모은 심현대 작가(부산대 기계공학과 졸업).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종이 위에 그대로 옮기는 재주가 있다. 

게다가 그림 사이즈는 100원짜리보다 작다. 

미술학원 근처도 가본 적 없는 순수혈통의 공대남 실력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지난해 겨울, 심현대 작가에게는 미대에 다니는 여자친구가 있었다(과거형). 친구 따라 강남가듯 여친 따라 화실을 자주 드나들던 그는 조금씩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됐다. 미대생들이 그리는 그림을 슬쩍 보고나니 ‘나도 그릴 수 있겠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겼다. 


여자친구는 그런 그의 손에 스케치북과 연필 한 자루를 쥐어줬다. 도구를 갖게 된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따라 그리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던 터라 연예인 얼굴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진짜 미대생보다 잘 그리다니! 


나는야 복제맨, 뭐든지 따라 그린다!


“어릴 때부터 ‘복제’에 재능이 있었어요. 무언가 따라 그리고, 따라 만드는 것을 잘했거든요. 지우개똥을 모아 공룡을 만들고, 종이로 입체 장미를 접고, 고무동력기를 만들면 다들 감탄했어요.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고등학교 때는 브랜드 로고를 똑같이 따라 그려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죠.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지만, 똑같이 그리고 만드는 것이라면 저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을 정도예요.” 


하지만 타고난 재능은 점차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평범한 학생, 그것도 공대생에게는 따라 그리고, 만드는 재능이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재능은 개나 줘버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참동안이나 자신의 재능을 잊은 채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심현대 작가의 작품 


심현대 작가가 숨겨둔 재능을 다시 세상에 선보인 것은 군 복무 중. 4시간 동안 시청각 자료를 봐야하는 정신교육 시간,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그는 아주 오랜만에 펜을 잡았다. 그리고는 동기가 가져온 만화 ‘원피스’의 이미지 카드를 쓱쓱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그림에 열중했는지 간부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다. 그런데 이게 웬걸. 딴짓을 하다 걸려 한참 야단을 맞을 줄 알았는데, 간부는 그의 그림을 유심히 보더니 ‘사진도 그릴 수 있겠냐’ 묻는 것이 아닌가. 


이후 그는 일과에도 제외된 채 간부들의 사진을 보고 초상화 그리는 일을 반복했다. 간부들이 준 증명사진을 보고 따라 그리는 일이었는데, 모두들 그의 실력을 보며 ‘미쳤다’고 놀랄 정도였다. ‘나 잘 그림?’하던 의문은 이 사건을 계기로 ‘나 잘 그림!’의 확신으로 바뀌었다. 


동전보다 작은 그림, 쓸데없이 잘그렸네?


여자친구에게 선물 받은 스케치북에 그가 제일 먼저 그린 것은 연예인 얼굴이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연예인들의 사진을 보고 똑같이 따라 그리는 것을 반복했다. 완성된 그림은 SNS에 올렸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공대생이 그린 그림 맞아?’, ‘정말 똑같다’라며 사람들이 감탄했고, 그는 더욱 열심히 그림 그리는 것에 매진하게 됐다. 


“그렇게 그림에 흥미를 가질 무렵, SNS에서 우연히 ‘로레인 루츠(Lorraine Loots)’라는 미니어쳐 일러스트 작가를 알게 됐어요. 동전 크기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였는데, 팔로워 숫자가 20만 명이 넘을 정도로 굉장히 높은 인기를 얻고 있었죠. 그의 그림을 보고는 충격을 받을 정도였어요. 굉장히 작은 사이즈의 그림인데 너무 잘그렸더라고요.” 


로레인 루츠의 그림에 자극을 받은 그는 ‘나도 작게 그려볼 거야’라는 결심을 하게 됐다. 군대에서 간부들의 초상화를 그릴 때도 증명사진보다 조금 크게 그려본 경험이 있어 자신감이 생겼다. 로레인 루츠의 작품 중에는 수채화 그림이 많았지만 일단 연필로만 작게 그리는 것에 도전하기로 했다. 물감을 만져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채색까지는 도무지 엄두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케치 정도쯤은 쉽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 선의 굵기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힘 조절이 필수!


하지만 너무 만만히 봤던 것일까. 좌절의 시간이 이어졌다. 큰 그림도 제대로 그려 본적이 없는데 동전만한 크기로 작게 그리려니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작게 그리는 것에 비해 그림의 선이 두꺼워 느낌이 잘 살지 않았다. 얇은 선을 그리지 못해 눈동자를 그려 넣기도 어려웠다. 차라리 붓을 사용한다면 일자로 세워 얇게 그릴 수 있을텐데, 연필로 얇은 선을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수정하는 것도 문제였다. 그림이 작다보니 코만 살짝 지우려다가 얼굴 전체를 지워져버리기도 했다. 


그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고, 결국 힘 조절로 선을 얇게 그리는 법을 터득했다. 지우개를 뾰족하게 깎아 쓰고, 피부 톤은 붓이나 면봉으로 살살 문지르는 등 자신만의 노하우도 익혀갔다.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보완하며 지난 1년간 200여점의 작은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 완성되면 뿌듯한 마음으로 SNS에 업로드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그림에 호기심을 보였고, 그의 실력에 감탄했다. 주로 연예인 사진을 따라 그리다보니 모델이 된 연예인을 태그로 걸기도 했는데, 설리, 정우성, 김그림 등 몇몇 연예인은 그의 그림에 ‘좋아요’를 누르며 감사의 표시를 전하기도 했다. 


△똑같아! 그의 주특기는 연예인 얼굴 그리기


대학원도 때려쳐, 취업 대신 가난한 예술가의 길을 택하다


작은 사이즈의 그림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공이 적게 드는 것은 아니다. 짧으면 1시간 30분에서 복잡한 그림은 5~6시간까지 소요될 때가 많다. 그는 가장 어려웠던 작품으로 ‘광안대교’와 ‘오토바이’, ‘이삭줍는 여인들’ 등의 작품을 꼽았다. 무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꼬박 8시간 이상이 소요된 것들이다.   


“인공물은 웬만하면 똑같이 그리려고 해요. 광안대교나 오토바이는 생각보다 너무 복잡해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림의 사이즈가 크면 여유롭게 볼 수 있는데 작아지면 세세한 부분은 구분하기가 더욱 어려워져요. 또 한 번 멈추면 다시 시작하기 어려워 한 번에 끝내려고 하는데 쉽지 않죠.”


SNS에서 종종 사진을 보내며 작품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기도 하는데, 가끔 곤혹스러운 작업을 하게 될 때도 있다. 몸에 문신을 한 사람을 그려야하거나, 털이 많은 애완견 등을 그려야할 때는 울고 싶을 지경이라고. 


△가장 그리기 어려웠던 작품 3개. 왼쪽부터 오토바이, 광안대교, 이삭줍는 여인들


최근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진정한 ‘프리’의 세계로 들어섰다. 사실 대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도 진학했었는데, 한 학기만 다니고 지난달 자퇴를 했다. 진짜 ‘나노드로잉’ 작가로 나서기로 한 것이다.


“고등학생 때는 부산대 기계공학과라고 하면 꽤 괜찮아 보였어요. 그런데 학교를 다니고, 졸업할 때가 되니 그냥 대졸자 중 한명이더라고요. 대단한 지식도 실력도 없었죠. 그래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느껴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보다는 일반 회사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죠. 그렇게 지내보니 저는 회사 생활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어요.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데, 회사 생활은 그럴 수가 없잖아요. 취업을 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죠.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제가 그리던 그림에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장은 아니겠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5~10년 후에는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 작품과 함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심현대 작가 

 

본격적인 나노드로잉의 길에 들어선 그는 새로운 그림에도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냥 작게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두 개를 섞어 ‘창작물’을 만드는 것. 슈렉과 스티치를 미묘하게 섞은 ‘슈티치’, 스펀지밥과 램프의 요정 지니를 섞은 ‘스펀지니’ 등 재미있는 캐릭터를 만들기 시작한 것. 사람들은 절묘하게 어울리는 캐릭터 그림에 많은 호응을 보내고 있다. 


다른 작가들과의 콜라보 작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연필심 공예, 병뚜껑 공예를 하는 친구들과 모여 미니어처 작업을 시작해보기로 한 것.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 미니어처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셋이 모여 무언가를 만들면 좋은 시너지가 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빅픽처를 그리고 있어요. 지금은 이렇게 조금씩 시작하지만 40대가 되기 전에는 길에서 만나는 10명 중 4명은 저를 알아보게 할 거예요. 그림을 그려 유명해지고, 책도 내고 강연도 하고 싶어요. 지금은 터무니없는 얘기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일단 계속 해보려고요. 뭐 이것저것 하다보면 굶어죽지는 않겠죠?”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