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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Q열전] 내가 면목동 변태라니! 생리대 만드는 남자, 이지웅 [공모전 멘토칼럼] 조회수 : 79461

[꼴Q열전] 

내가 면목동 변태라니!

생리대 만드는 남자, 이지웅 


서울 면목동에는 이상한 전설이 있어. 평화로운 이곳에 변태(?)가 출몰한다는 거야. 까맣게 그을린 피부에 덩치도 우람한 남자인데, 마트나 편의점에 가서 생리대 코너를 힐끗 거린대. 한참 보고 있다가 구입도 하는데, 한 번에 사는 양도 엄청 많아! 계산을 해주다가 ‘왜 사는 거냐’ 물으면 아무 말 없이 씨익 웃는다더라. 그 남자, 정체가 뭘까? 


△ 딜럽 이지웅 대표


면목동 편의점 알바생들은 익히 알고 있다는 변태남. 멀쩡하게 생겨서는 ‘생리대’를 왕창 구입하는 남자다. 팬티라이너부터 오버나이트까지, 각종 브랜드의 다양한 사이즈 제품을 구입해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선다고 하는데…. 행동으로만 봐서는 딱 변태로 오해받기 좋은 그는 사회적 기업 '딜럽'의 이지웅(28) 대표. 최근 SNS에 취약계층을 위한 저가 생리대를 만들겠다고 선포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상 남자다. 


여성의 그 날, “그냥 한 번에 ‘빵’ 끝나는 거 아니었나요?”

“지난겨울,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취약 계층 중고등학생을 만나게 됐어요. 학생들에게 ‘어려운 점, 힘든 점이 뭐냐’ 물었는데 정말 생각지 못했던 답을 하더라고요. ‘생리를 할 때가 힘들다’고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생리대 구입비용이 부담된다는 것이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잘 이해가 안됐어요. 생리대 가격도 모르고, 생리라는 것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으니까요.” 


보통의 남자들이 그렇듯, 이지웅 대표 역시 ‘여성의 그 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는 “그냥 ‘빵’ 한 번에 끝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여성들이 생리를 하며 겪는 고통과 불편한 생활 등에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생리대를 2~3시간마다 교체해야하고, 한 달에 30장 이상을 사용할 때도 있다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생리대의 가격이었다. 생필품처럼 사용해야하는 생리대의 가격이 생각보다 너무 비쌌던 것. 특히나 한 달에 몇 십만 원의 국가 보조금으로 생활해야하는 아이들에게 생리대 구입비용은 부담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바로 저가 생리대 제작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2차 샘플로 제작된 제품. 수정 및 보완 작업을 거쳐 3차 샘플을 제작할 계획이다. 


“생리대 만드는 공장을 알아봤는데, 단가도 비싸고 기본 수량도 너무 많았어요. 아무래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포기했죠. 그런데 올 봄에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을 사용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어요. 누구 하나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 무책임해보였고, 다시금 저가 생리대를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죠. 무역업에 종사하는 지인이 중국의 공장을 알아봐줬고, 운 좋게 공장을 찾을 수 있었어요. 미국에도 수출하는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인데, 아이들을 위해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전달해 낮은 단가로 진행할 수 있었죠.” 


공장 섭외 후에는 본격적인 생리대 제작 작업에 착수했다. 모양과 패턴 등을 정하고 일반 면, 비닐 재질, 면 부직포, 순면 커버 등 다양한 원단을 꼼꼼히 살펴보며 연구했다. 또한 흡착제는 얼마나 사용할지, 흡수율은 어느 정도로 지정할 지도 고민했다. 


그는 많은 여자 지인들을 만나며 생리에 대한 조사를 했다. 이를 종합해 생리 일수나 양 등에서 평균값을 냈고, 최적화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여자보다 더 생리에 대해 잘 아는 남자가 됐다. 이 대표는 생리대의 흡착률이 높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며 “여성의 자궁과 질은 건조하면 안 되는 신체 기관이다. 그런데 흡착제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 생리혈 뿐만 아니라 수분까지도 빨아들여 건조해진다”라고 능숙하게 설명을 이어가기도 했다. 


직접 착용해보는 것은 기본, 전 세계 생리대까지 연구  

“사람마다 취향이 각각 다르더라고요. 향이 있는 제품을 선호하는 분들도 있고, 날개가 넓은 것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고요. 제품을 만들 때 그런 취향도 고려했어요. 또 참고를 위해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핀란드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생리대를 구입해 조사하기도 했죠. 역시 비싼 게 좋더라고요.(웃음) 북유럽 제품은 가격이 비싼 대신 천연 오가닉을 사용하죠. 인도 제품은 기저귀처럼 생겼고요. 그래도 가격 대비로는 국내 제품이 최고예요.”  


△ 그의 사무실 책상에는 생리대가 가득~ 연구, 또 연구 중


물론 직접 착용은 기본이다. 그는 처음에 생리대를 어떻게 착용해야 하는지 속옷에 붙이도록 되어있는 스티커를 떼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고, 날개에 있는 스티커(움직이지 않도록 속옷에 부착)를 맨살에 붙이고 다니기도 했다. 


“실험을 하고 연구해야하니 계속 생리대를 구입했어요. 그런데 여기 면목동(그의 사무실이 위치한 곳)이 동네가 크지가 않거든요. 마트나 편의점 몇 곳에서만 구입을 하게 되는데 한 번 가면 웬 남자가 종류별로 생리대를 잔뜩 사가니 이상하게 보시더라고요. ‘이걸 왜 사냐고’고 물어보실 때도 있는데, 구구절절 생리대를 만들 거라고 설명하기도 뭐해서 그냥 웃고 말아요. 그럼 ‘저거 변태구나’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변태 취급까지 당하며 연구한 생리대는 현재 2차 샘플까지 만들어진 상태다. 수정 및 보완 작업을 거쳐 3차 샘플이 나오면 식약청 등 검사기관에 의뢰해 안정성을 확인 받은 후 정식 판매에 돌입할 예정. 


△ 페이스북에 공개한 생리대 제작 프로젝트. 해당 글에는 48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조금씩 욕심을 내 재질을 더 좋은 것으로 바꾸다보니 처음 생각한 단가보다 가격이 올라가고 있지만, 그래도 시중에서 판매하는 생리대보다는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이 대표는 “현재 판매 중인 생리대의 최저가가 개당 100원 꼴인데,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개당 80원 정도에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일반 소비자가 제품을 1개 구입하면 자동으로 1개의 제품이 취약계층에게 기부될 수 있도록 하는 1+1 판매 방식도 진행된다. 일단 9~10월 중 크라우드 펀딩으로 판매를 시작하고, 이후에는 딜럽 사이트 내에서 독자적으로 판매를 할 계획이다. 


봉사의 ‘ㅂ’도 모르던 체대생, 죽음의 고비에서 인생 리셋 

취약 계층을 위한 생리대를 제작하기 이전부터 이 대표는 남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2013년부터 ‘업드림코리아’라는 봉사 단체를 운영하고 있고, 2015년에는 캄보디아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어 수익금을 기부하는 착한 브랜드 ‘딜럽’을 런칭했다. 마치 뼛속까지 봉사정신으로 투철한 사람인 것 같지만 사실 그가 이렇게 변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윈드서핑을 시작해 고등학교 때는 청소년 국가대표까지 했어요. 체대에 입학해서는 돈을 버는 일에만 몰두했죠. 수영 강사, 중국집 배달원, 대리운전, 군고구마 장사, 인형탈 아르바이트, 생동성 실험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섭렵했죠. 그렇게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 졸업 전에 4000만 원까지 모을 수 있었어요. 그 돈으로 신나게 놀았고, 휴대폰도 두 개나 사고 오토바이를 타는 등 허세 가득한 생활을 했어요.” 


△ 세계 여행 중에 촬영한 사진 


하지만 불행은 생각지 못한 순간 찾아왔다. 오토바이를 타던 중 큰 교통사고가 났고,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한 달 이상 병원 신세를 졌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 그는 ‘내가 이번 사고로 죽었다면 후회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쓰지도 못한 돈이 많았고, 어머니에게 해드리지 못한 것도 많았다. 이 대표는 의미 없이 돈을 버는 것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에펠탑 앞에서 바게트 빵을 먹고, 스위스에서 퐁듀를 먹고, 이탈리아에서 피자를 먹는 것’이었다. 그는 고민하지 않고 곧장 유럽 여행을 떠났다. 


△ 캄보디아 아이들이 그린 그림. 아이들의 그림의 딜럽 제품의 디자인으로 연결된다.


“인도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아 길에 돼지들이 뛰어다녀요. 길에서 쓰레기를 먹으며 생활하는데, 어느 날은 돼지 옆에서 같이 쓰레기를 먹는 아이를 보게 됐어요. 충격적인 장면이었죠. 밥 한 끼가 우리 돈으로 100원 정도의 가격인데 그 돈이 없어 쓰레기를 뒤지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동시에 제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이 부끄러워졌죠.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탐스(슈즈 브랜드. 신발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신발 한 켤레가 기부된다)’라는 브랜드를 알게 됐어요. 국내에도 그런 브랜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딜럽’을 만들게 됐죠.” 


△ 캄보디아를 방문한 이지웅 대표


2015년 창업한 사회적 기업 ‘딜럽’은 현재 60여 가지의 의류 제품을 제작하며 캄보디아 아이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창업 후 1년 정도는 적자 상태가 지속됐지만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걸어와 현재는 사무실 월세 걱정은 하지 않을 정도로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다. 


“10년 후에는 딜럽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어요. 그럼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남미, 아프리카의 아이들도 도울 수 있겠죠. 생리대 사업도 안정적으로 지속하면 좋겠어요. 지금은 중형 사이즈만 제작하고 있지만, 팬티라이너, 템포 형태 등도 계획 중이거든요. 당장 돈을 버는 일에는 급급하지 않아요. 물론 돈 욕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돈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거든요.” 


글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