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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Q열전] ‘무심한 거리가, 바다가 좋아서’ 요트 타고 바다로 간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임수민 조회수 : 1619

[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흑백사진이 가득한 전시장에서 그녀를 만났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는 그녀가 요즘 얼마나 바다에 푹 빠져있는지를 짐작게 했다. ‘길바닥’에서 사진을 찍던 그녀가 바다로 나간 이야기를 들었다. 



△ 임수민 포토그래퍼. 뒤에 보이는 사진은 그녀의 작품이다. (사진=이승재 기자)



임수민(27) 씨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순간을 찍는다.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졸고 있는 꼬마 아이나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노인, 바닷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여인 등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는다. 조금 더 예쁜 색감으로 보정하려 애쓰는 요즘 사람들과 달리 뚝심 있게 언제나 흑백 사진을 고집한다. 색을 지워버리면 ‘사람’만 남는다는 것이 그녀의 철학이다. 


“대학 수업 중 교수님이 흑백사진 한 장을 보여줬어요. 독일 총리가 유대인을 학살한 후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이었죠. 반대편에는 기자들이 그 모습을 촬영하려 우왕좌왕하고 있었고요. 결코 구도가 좋은 사진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멋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순간이 잘 담겨있었죠. 그때부터 흑백 사진을 깊게 파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사진을 ‘기록’이라는 의미로 바라보게 됐고요.” 


이력서에 쓸 수 없는 쓸모없는 것을 찾다 보니  


임 씨가 포토그래퍼가 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연세대에서 국제학을 전공한 그녀는 문화적 외교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외국에서 지낸 시간이 많아 한국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애정이 있었고, 더 넓은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진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교환학생을 택했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미국 에모리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갔어요. 그곳에서는 일부러 쓸모없는 수업만 찾아다녔죠. 학생회, 동아리, 전공 수업 등 한국에서 그동안 했던 ‘쓸모 있는 행동’에 질렸거든요. 이력서에는 올릴 수도 없는 하찮은 것을 하는 것이 목표였죠. 가장 쓸모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선택한 것이 바로 암실 수업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사진 현상을 위해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찍었는데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어요. 이게 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 최근 임 씨는 '무심한 바다가 좋아서'라는 책을 출간했다. (사진=이승재 기자)



사진이라는 새로운 관심사를 찾은 임 씨는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사진 찍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그것을 업으로 연결할 용기까지는 내지 못했다. 취업을 위해 인턴 생활도 하는 등 노력을 했지만 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결국 그녀는 휴학을 하고 본격적으로 사진 촬영을 하기 시작했고,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강연을 하며 사진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관계에서의 외로움 피해 바다로 훌쩍


길에서 사람들을 찍던 그녀가 바다로 떠난 것은 지난해 3월이다. 요트를 타고 남미 파나마에서 누쿠히바, 사모아, 사이판 등을 거쳐 부산까지, 장장 5개월의 항해를 떠났다. 바다에는 관심도 없던 그녀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모두가 놀랐다.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면서 이태원에 작업실을 마련했어요. 지역의 특성상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었죠. 처음에는 학교에서 느끼지 못했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 좋았어요. 하지만 점점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이 느껴졌죠. 제가 활동이 많아지다 보니 주변에서는 저를 통해 뭔가를 얻으려고 부탁을 해오는 일이 많았고,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관계가 돼버리더라고요.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마침 SNS에서 바다로 나갈 사람을 모집하는 글을 보게 됐어요. 태평양으로 나가 하나의 점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지원한 거죠.” 


김승진 선장의 ‘신 대항해 시대’라는 프로젝트였다. 크로아티아에서 출발해 3만 2000km를 돌아오는 코스로 18개의 구간마다 일반인이 탑승할 수 있는 국민 참여 이벤트였다. 임 씨는 항해 중간에 합류했는데 보통 참가자들이 2주 정도 배를 타는 것에 비해 5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했다. 



△ 임수민 포토그래퍼의 사진전 '무심한 거리가 좋아서' 전시장. 

전시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10월 14일까지 진행된다. (사진=이승재 기자)


첫 한 달은 신기하고 설렜다. 배에서의 생활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누구는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고, 누구는 좋아하는 요리만 하는 등 각자가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했다. 임 씨는 주로 일기를 썼다. 배를 타며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고,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감정과 일상을 기록하는 것에 집중했다. 


폭풍우를 만나는 것도 재미있었다. 큰 파도 위에서 배가 춤추는 느낌이었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 도시에서는 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누군가 나의 말에 상처받지 않을까 같은 두려움만 가득했는데 바다에서는 눈앞의 두려움에 맞설 수 있었다. 낯설면서도 신이 났다. 


물이 귀한 바다에서 비로 샤워를 하는 경험도, 밤하늘에 뜬 보름달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배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고 그 순간을 기록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가니 조금씩 감정에 변화가 생겼다. 또다시 관계에서 오는 문제였다. 


“함께 배를 타는 사람들과의 공통점은 호모사피엔스라는 것? 저만 20대이고, 여자고, 아티스트이고, 뱃사람이 아니었죠. 그러니 감성이 달랐죠. 바다 위의 달을 보고 감동해 이야기하면 아무도 공감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여자라서 힘을 쓰는 일에서는 자연히 밀쳐졌고, 신체의 한계도 느꼈고요. 점점 말수가 줄어들더라고요. 제 인생에서 가장 고요한 시간을 보낸 시기였죠.” 


‘이번에는 선장이 되어’ 요트 구입해 다시 또 바다로


임 씨는 첫 바다로의 모험은 ‘실패’였다고 말한다. 사람에게서 도망쳤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사람 때문에 외로웠다. 강해지고 싶어 떠났는데 더 약해져 돌아왔다. 그녀는 도망치는 것이 결코 해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오랜 시간 고민했고, 결국 다시 바다로 가기로 결심했다. 


원하는 항해를 하기 위해 직접 요트도 구입했다. 몇 개월간의 노력 끝에 여러 회사의 후원을 받아 마련할 수 있었다. 요트 면허도 취득했고 곧 통영 소매물도로 혼자만의 첫 항해를 나갈 예정이다. 언젠가는 비행기가 없어 갈 수 없는 지역까지 배를 타고 나가려는 꿈도 있다. 작은 섬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한다. 


“모험이라고 하면 다들 대단한 일을 생각해요. 하지만 안 타본 버스를 타는 것도 모험이고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도 모험이에요. 중요한 건 거기서 무엇을 느꼈는가 하는 것이죠. 대단한 모험이라 생각하고 배를 탔지만 그곳에서 생각하는 건 여전히 ‘오늘 뭐 먹지’더라고요. 일상 속에서 새로운 걸 찾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phn09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