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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여성 은행장’ 꿈꾸던 그녀, 은행 사표 내고 연기 강사로 변신 조회수 : 12428

[꼴Q열전] 


△ 사진 = 김기남 기자


[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넘치는 끼는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법이다. ‘연기’에 대한 애정이 넘쳐흐르는 것을 주체하지 못해 잘 다니던 은행도, 연구소도 박차고 나온 그녀. 통장은 가벼워졌으나 마음은 누구보다 풍족하다는 이해랑(32) 씨를 만났다. 


이해랑 씨는 ‘누구나 연기해랑(www.facebook.com/JUSTDOACT)’이라는 일반인 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감정을 잡고 눈물 연기 등을 연습하는 일반 연기학원과는 조금 다르다. ‘누구나 연기해랑’은 연기를 한 번도 배워보지 않은 이들이 연기를 통해 자신을 관찰하고, 표현하고, 소통하며 치유하는 일종의 연기 워크숍이다. 


보통 한 강좌는 4주 과정으로 구성된다. 오브제(물건)를 가지고 연기하는 것부터, 자신의 몸에 집중해 연기하기, 1인 연기, 2인 연기 등을 경험할 수 있다. 핵심은 자기 안에 있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는 것. 동작에는 정답도 없고, 누가 가장 잘했다, 못했다를 따지지도 않는다. 


“고등학생부터 60대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연기를 한다는 것이 어색해 쭈뼛거리는 분들도 있지만 금세 재미를 느끼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시더라고요. 몰랐던 나를 발견했다는 분들도 있고, 나도 모르게 갇혀 있던 틀을 깰 수 있었다는 분들도 있죠. 일반 연기학원은 ‘연기를 잘하도록’ 가르치잖아요. 연기해랑은 자기를 표현하고 가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수강료도 4~5만 원선이라 부담이 없고요.” 



△ '누구나 연기해랑' 수업 사진


휴학하고 연기 올인, 배역 뺏기며 현실의 벽을 느껴  


‘누구나 연기해랑’의 이해랑 씨는 사실 연기 전공자는 아니다. 대학시절 소비자학을 전공했고, 관련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그런 그녀가 연기에 빠지게 된 것은 내재된 끼를 분출할 통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춤추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있어 대학은 성적에 맞춰 일반적인 학과로 진학했죠. 춤을 추지 않으니 안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분출하지 못해 답답함이 쌓이더라고요. 뭘 해야 할까 하다가 ‘연기’가 떠올랐어요.” 


‘나는 왜 춤을 좋아했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어릴 적부터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던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꼭 춤이 아니어도 될 것만 같았다. ‘연기’라면 그동안 쌓여있던 끼를 모두 분출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씨는 대학교 3학년, 휴학을 결정하고 당장 연기 아카데미로 달려갔다.


이 씨는 연기를 배우던 그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말한다. 춤에서는 채워지지 않던 표현의 욕구마저 연기를 통해 표현할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가까이를 이 씨는 연기 학원과 개별 연습실을 오가며 오직 연기에만 빠져 지냈다. 연기 연습을 하느라 비련의 여주인공마냥 버스 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고, 배역을 따기 위해 온갖 소속사를 돌며 프로필을 돌리기도 했다. 


“굉장히 어렵게 드라마 조연 배역을 따내 생애 첫 미니시리즈 출연을 하게 됐어요.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그런데 촬영 도중에 배역을 뺏기게 된 거예요. 드라마 조연들이 여주인공 소속사의 배우들로 전부 교체가 됐거든요. 정말 작은 역할이었지만, 배우로 성장할 기회였기 때문에 더욱 속상했죠.”


연기 학원을 다니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모아둔 돈도 하필이면 다 떨어진 때였다. 이 씨는 일단 학교로 돌아가 졸업을 하고 본격적인 연기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망각하고 있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을. 학교로 돌아가니 언제 연기를 했었냐는 듯 이 씨는 학교생활에 녹아들었다. 



△ 사진 = 김기남 기자


스펙 하나 없는 취준생, ‘연기’로 은행 합격


이 씨는 다른 친구들처럼 수업을 듣고, 취업 준비도 시작했다. 인턴 생활을 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은행에도 취업했다. 경쟁률이 높기로 소문난 은행 취업을 자격증도 하나 없이 해낼 수 있던 비결은 다름 아닌 ‘연기’다.


“대학 시절 관련 스펙이 아니라 연기에 빠져 지냈다는 것은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하지만 자기소개서에 솔직하게 다 썼어요. 그리고는 ‘연기를 했기 때문에 고객이 기분 나쁘게 행동을 해도 언제나 웃으며 대응할 수 있다’고 썼죠. 무엇보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건 합숙 면접 때였어요. 합숙면접에서 여자가 책상 위로 올라간 경우는 제가 최초였다고 하더라고요. 앞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잘 보이지 않아 책상 위로 올라갔거든요. 워낙 적극적이고 감정 표현이 자유롭다보니, 그런 행동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죠.” 


이 씨는 1년 6개월간 은행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7시 30분에 출근해 밤 11시 30분에 퇴근하는 생활이 이어지다보니 직장 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늘 자신이 결정하고 주도하는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 은행 생활은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무의미한 생활로 느껴졌다.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 되겠다는 일념 하에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텼지만, 매일 울면서 출퇴근을 하는 생활에 한계를 느꼈다. 우울증마저 찾아왔고, 결국 28살이 되던 해 이 씨는 은행을 퇴사하고 백수의 길에 들어섰다. 



△ '누구나 연기해랑' 수업 사진


취미로 연극하다 ‘누구나 연기해랑’으로 인생 2막 도전 


마냥 백수로 놀기엔 적지 않은 나이인지라, 이 씨는 도피처로 대학원을 택했다.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고, 연구소에도 취직했다. 하지만 연구소 생활도 그녀에게는 맞지 않았다. 이번에는 일이 너무 없어 심심하고 무료했다. 


“연구소에 다닐 때는 아침, 점심, 저녁까지 하루 3번씩 운동을 했어요. 제 안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방법이었죠. 하지만 운동으로도 부족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오픈컬리지의 연극 프로젝트를 발견했죠. 잊고 있던 ‘연기’에 대한 감정이 떠오르면서 취미로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 프로젝트에 참여해 함께 공연을 만들어나가며 이 씨는 오랜만에 심장이 쿵쿵대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본업보다도 연극 활동에 더욱 빠져 지냈고, 이런 즐거움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꽁꽁 감춰둔 감정을 마음껏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인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고민 끝에 만든 것이 ‘누구나 연기해랑’이다. 



△ '누구나 연기해랑' 수업 사진


2016년 2월, 처음 ‘누구나 연기해랑’을 시작할 때만해도 이 씨는 연구소에 재직 중이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취미처럼 연기 수업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씨의 머릿속에는 ‘큰 그림’이 그려졌다고 한다. 수강생이 꾸준히 늘고, 다양한 커리큘럼에 대한 문의가 많아지다 보니 ‘이걸 제대로 해봐도 되겠구나’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이 씨는 지난 7월 퇴사를 했고, ‘누구나 연기해랑’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직은 수업료만으로 먹고 사는 것은 힘들어요. 하지만 퇴사한 걸 후회한 적은 없어요. 은행 입사 동기들이 지금쯤 받고 있을 연봉을 생각하면 어지럽긴 하지만, 저는 지금의 제 삶이 좋아요. 앞으로 다양한 커리큘럼을 계속해서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제대로 알 수 있게끔 영감을 주는 ‘영감쟁이’가 되고 싶어요. 제가 연기를 했을 때 정말 즐거웠던 것처럼 많은 분들이 그 즐거움을 느끼길 바라요.” 


△ '누구나 연기해랑' 프로젝트 영상



phn09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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