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통신원

[어느 유학생의 일기 ①] “낯설지만 괜찮아” 조회수 : 7497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지금. 단 한 가지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어? 

장담컨대, ‘해외경험’이라고 답한 사람이 반은 넘을 거야. 그럼 당장 못 하는 이유는 뭐야? 

중 하나가 ‘두려워서’라면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지금 이 시각에도 낯선 해외에서 열심히 유학생활 중인 이들이 자신들의 일기를 보내왔거든. 

유학생활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로 조금이나마 그곳의 생활을 알 수 있을 거야. 

이번에 보내온 일기에는 해외생활의 시작이 적혀 있더라고. 

아마 이번 일기를 읽고 나면 앞으로 펼쳐질 이들의 생활이 궁금해질 걸? 









# 유학생 일기 


강주형 (De Anza College, Geography, 2) 

필리핀 어학연수를 계기로 영어공부에 흥미를 느껴 미국유학을 결정한 영어 성애자. 군복무 때는 영어공부를, 휴가 때는 유학준비를 한 의지의 청년이다. 미국에 조건부입학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전역 한 달 만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유학 3년차. 


어학연수생에서 유학생이 되기까지 


 

미국의 조건부입학은 1~2년간 어학연수를 통해 어느 정도 영어실력을 갖춘 뒤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학원이나 대학교 부설 어학기관에서 교육받으며 영어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보통. 나는 학원에서 어학연수의 첫 발을 뗐다. 


학원이 있던 곳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북쪽 도시 샌 라파엘(San Rafael). 학원이 대학교 안에 위치한 덕분에 미국 대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잦은 곳이었다.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지만, 미국 캠퍼스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드디어 첫 수업. 잔뜩 긴장한 나에게 던진 선생님의 첫 마디는 “Don`t be shy”였다. 많은 아시아 학생들이 부끄러워 말도 잘 하지 않을뿐더러, 질문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라고 다를까. 막상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도 틀릴까봐 함부로 말을 내뱉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군인정신!’을 외쳐봤지만 소용없었다. 


하지만 수업이 거듭될수록 부끄러움은 사라졌다. ‘미국 학생들에게 질문하기’ ‘미국 친구들 의견 듣기’ 같은 과제 덕분이었다. 

 

여행도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한 꺼풀 벗겨주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인 만큼 동부와 서부의 시차도 다르고 문화도 다양해 볼거리, 놀거리가 많았다. 학원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한국인 친구들뿐이었기에 모든 난관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예약전화였는데, 당시에는 진땀을 흘렸지만 통화를 마치고 나면 한 단계 발전한 내 영어실력이 눈에 보였다.


 학원수업보다 몇 배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1년간 미국에서 공부하며 미국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 나갔다. 


어학연수 과정을 끝낸 나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두 가지였다. 한국의 대학교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미국의 대학에 진학할 것인가. 새로운 도전이 두렵기도 했지만, 미국에서의 생활이 무척이나 행복했고 미국 대학을 졸업하고 싶다는 욕심이 자라고 있었다. 


오랜 시간 고민하지 않고 결정했다. 미국에 남기로. 

어학연수생에서 유학생이 되던 순간이었다. 








# 워홀러 일기 


웅쓰 

모험을 떠난 지 70일째 되는 네덜란드 하루살이. 10여 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동안 치킨과 곱창만 먹어대다 불현듯 네덜란드 워킹홀리데이를 결정했다. 사진과 하늘, 여행을 좋아하고, 아이들과 노는 것과 사람 만나는 것을 사랑하며 먹는 것에 예민한 워홀러. 


‘0’유로로 시작한 네덜란드 생활 



역마살이 있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고, 새로운 곳에 가면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워홀러의 시작은 어느 대외활동에서 본 영어면접이 계기가 됐다. 면접 점수로 아무나 받기 힘들다는 ‘0’점을 받고 나서다. 오기가 생겨 영어를 정면돌파하기로 마음먹었고, 호주로 무작정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2년간 호주 모험을 마치고 드디어 이력서에는 ‘영어실력 : 상’이라고 쓸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토익이나 토플에 써먹는 영어가 아니라 어디를 가나 살아남을 수 있는 ‘생계형 영어’ 실력이라는 것. 


또 하나의 문제는 ‘한국에서 취직은 싫다!’는 나의 굳은 의지.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나와 맞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치킨과 곱창을 맘껏 먹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나름대로 취업을 위한 준비를 해보려고 했다. 천천히 나에 대해 정리해보니 해본 것이라곤 사람을 많이 만나기 위해 했던 대외활동과 아르바이트뿐이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농부생활을 경험했고, 리조트에서 아이를 돌봤다’고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러던 중 네덜란드 워킹홀리데이가 새로 발효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두근두근. 평화로운 들판에서 풍차가 도는 장면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떠나야 했다. 단골 맛집보다 어제 문을 연 새로운 밥집에 마음이 끌릴 때가 있지 않은가? 딱 그랬다.


네덜란드어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뒤로 미뤄둔 채 일주일 만에 워킹홀리데이를 결정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은 두 달. 네덜란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편도 항공료만 간신히 모았다. 그리고 노트북과 카메라를 넣은 가방 하나와 아프리카 북인 젬베, 나름대로 생존을 위해 꾸린 ‘생존박스’를 들고 떠났다. 단 1유로도 없이. 네덜란드 워홀의 시작이었다. 













# 교환학생 일기 


김용선(University of Central Missouri)

한국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 올 초 미국으로 떠난 열혈 교환학생.


정신차려보니 개강! 


센트럴미주리대로 가기 위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캔자스시티 국제공항. 공항에서 버스로 1시간30분을 달리자 학교 근처 숙소에 닿을 수 있었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7시. 오리엔테이션의 서막이 올랐다. 무려 3일 동안이나 이어진 오리엔테이션 말이다! 




20시간의 장거리 비행과 15시간의 시

차로 인한 피곤을 풀 새도 없었지만,  비자 서류를 갖추는 것부터 수강신청, 학교시설 이용법, 은행 계좌 개설까지 중요한 사항들을 숙지하고 결정해야 했기에 허투루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가장 먼저 부닥친 문제는 기숙사. 미리 알아둔 기숙사에 머물기를 희망했지만, 담당자가 다른 기숙사를 배정해주면서부터 혼란이 시작됐다. ‘원하던 기숙사에 자리가 없어서 그랬겠지’라는 결론을 내리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혼자 내린 결론은 틀렸다. 


내가 어떤 말도 하지 않아 원치 않던 기숙사에 배정받은 것이었다! 끊임없이 물어보고 요구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수강신청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수강신청은 국제교류팀 담당자와 1 대 1 면담으로 진행됐다.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한다고 한국에서 신청을 완료한 상태였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재학생들이 신청한 과목은 내가 신청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듣고 싶은 과목 몇 개를 신청했지만, 정말 듣고 싶었던 한 과목을 신청할 수 없어 아쉽기만 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담당자에게 몇 번이고 간절한 마음을 전했고, 교수님과 직접 이야기한 끝에 추가신청에 성공할 수 있었다. 


드디어 개강! 대부분의 수업시간표가 월·수·금 또는 화·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시간은 ‘자체휴강’을 해도 된다는 인식이 강한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첫 수업이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첫 수업에 결석하면 수업을 취소한 것과 같은 의미란다. 


외국인 학생이 나 혼자였기에 처음에는 주눅이 들었지만, 교수님께서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편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모든 교수님이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수업을 들을 때마다 새로운 수업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바쁘지만, 그만큼 놀라고 배우는 것도 많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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