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통신원

국문학 데이트 #2 신촌편 조회수 : 9671

가끔씩 그런 날이 있다. 글이 땡기고 책이 보고 싶은, 감수성이 폭발하는 날이 있다. 그런데 여유롭게 책만 읽으러 가기에는 오늘 날씨가 너무 좋다. 그럴 때엔 작정하고 문학기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이름하여 국문학 데이트. 기자가 직접 다녀와 영상으로 담아보았다.




1. 은희경의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속 신촌 사람들


 이것은 모두 3년 전의 일이다. 시간은 지나간다. 아니다. 시간은 정지해 있고 내가 그 곁을 지나쳐 간다. 아침마다 사람들에게 휩쓸려서 특급호텔 주변의 건물들을 스쳐지나갔듯이. 그 건물의 수많은 방을 일일이 두드려 보지 않고 그냥 무심코 지나쳐 걸었듯이. 중요한 것은 뒤돌아보지 않는 일이다.


은희경,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창작과비평(2006)


은희경 작가는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은 신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곤 한다. 지금도 대학가답게 수많은 젊은 학생들이 먹고 자고 마시고 만나며 헤어지는 공간이듯이 그녀의 작품 안에서도 신촌에서 나고자란 20대들의 희노애락이 그려지는 공간이 된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에서는 건물들을 무신경하게 스쳐지나가는 것에 대해 고민해보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지금 길을 걸으며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까? 책을 읽고 지금 연세로를 지나는 또래들은 또 어떤 고민을 가졌을까 떠올려 본다면 좋을 것이다. 



2. 성석제의 ‘즐겁게 춤을 추다가’ 속 신촌 거리


언제나 실패한다. 그들은 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런 일이 있었다, 서울하고도 신촌에. 언젠가 미국에서 그런 일이 있었듯이. 시간도 사람도 포스터도 추억도 모두 사라지고 골조만 앙상한 ‘언젠가는’만 남는다. 그러니 인생이여, 부탁하노니, 즐겁게 춤을 추시다가 그대로 멈출 줄 알지어다!


성석제, <즐겁게 춤을 추다가> 강(2004)


소설가 성석제도 연세대 법학과 출신인 만큼 신촌에 대한 애착이 큰 작가다. 그의 산문집인 <즐겁게 춤을 추다가>의 ‘언젠가는’에서는 신촌을 언급하면서 젊은 청년들의 고민들에 대해 쓴 글이 있다. 그는 신촌의 50년대부터 있었고 80년대까지 있었던 ‘섬’이라는 술집에 대해서 90년대부터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이어 “낮에는 유리와 플랜카드로 분칠한 새 건물이 비까번쩍하고, 밤에는 요요한 불빛으로 휘황찬란하다.”면서 점차 새로운 젊음의 거리로 변해가는 신촌에 대한 생각들을 남겼다.




3.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속 세브란스 병원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난 서적 월부 판매 외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돈 4,000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 전까지도 세브란스 병원 울타리 곁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누워 있을 시체실이 있는 건물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사상계(1965)


신촌역에서 3번 출구로 나와 연세로를 직진하여 내려가다 보면 세브란스병원을 만날 수 있다. 김승옥 작가의 <서울, 1964년 겨울> 작품에서 ‘나’는 선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게 된 ‘사내’의 고백을 듣게 된다. 책을 파는 외판원인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의대에 연구 학습용으로 4,000원을 받고 팔았음을 말하며 아내에 대한 그리움에 한동안 세브란스 병원 울타리 곁을 맴돌았음을 떠올린다. ‘사내’는 택시에 이튿날 자살하고 만다. 그가 느꼈을 허망함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다.




4. 김영하의 ‘퀴즈쇼’ 속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나는 영안실 입구의 전광판에서 그녀의 이름을 확인했다. 호텔처럼 죽은 자에게도 각자의 방이 있었다. 이 세계는 혹시 무수한 방으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신생아실에서 태어나 교실에서 배우고 소주방에서 술 먹다가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찜질방에서 목욕하고 채팅방에서 채팅하다 고시원의 쪽방에서 잠드는, 그리고 끝내는 대형병원 영안실에서 마감하는 삶.


김영하, <퀴즈쇼> 문학동네(2007)


김영하의 <퀴즈쇼>에서는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의 영안실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민수는 고시원의 ‘옆방녀’라 불리는 수희의 죽음을 조문하러 간다. 수희는 일도 하며 고시원에 돌아와 공무원 시험을 공부하며 지쳐 옆방의 민수에게 도움을 원했다. 하지만 딱히 연관점도 없다보니 민수는 귀찮아져갔다. 이에 그녀는 고달픔과 외로움에 죽음을 택하게 되는데 수많은 20대들을 대변하는 고시원 인물들과 이웃문화가 사라진 지금 우리들을 되돌아 볼 수 있다.




5. 기형도의 ‘대학시절’ 속 연세대학교 본관 앞 계단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기형도, <대학시절> 외국문학(1989)


 기형도 시인 역시 연세대학 출신으로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도 작품 활동을 계속했는데 <대학시절> 시는 당시 대학 다니던 때를 떠올리며 쓴 시이다. 기형도 시인은 한창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던 때인 80년대와 연세대의 은백양(연세대 본관 앞의 백양나무)의 숲을 배경으로 당시의 생각들을 담았다. 이곳을 찾아 이 시를 읽어보며 자신의 대학시절 고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6. 이양하의 ‘신록예찬’ 속 연세대학교 청송대


오늘도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우리 연전(연희전문학교, 연세대학교의 옛 이름)일대를 덮은 신록은 어제보다도 한층 더 깨끗하고 신선하고 생기 있는 듯하다. 나는 오늘도 나의 문법 시간이 끝나자, 큰 무거운 짐이나 벗어놓은 듯이 옷을 훨훨 떨며, 본관 서쪽 숲 사이에 있는 나의 자리를 찾아 올라간다.


이양하, <신록예찬> 조선일보(1937)


한편 연세대학의 교수로 있으면서 당시의 생각을 글로 정리한 작가도 있다. 이양하 작가는 영문학 교수시절 우거진 녹음을 즐기며 <신록예찬>이란 수필을 남겼다. 생기 넘치는 자연을 느끼며 그에 대한 예찬의 글을 썼던 만큼 지금도 연세대학엔 조경이 잘 되어 있어 찾아가게 된다면 이양하의 신록예찬을 함께 읽어본다면 좋을 것이다.




7. 윤동주의 ‘서시’ 시비(詩碑)와 윤동주 기념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37)


마지막으로 핀슨홀 앞의 윤동주 시비를 끝으로 이번 국문학 데이트를 마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가 적혀져 있는 윤동주의 시비와 함께 바로 뒤의 핀슨홀 기념실에는 윤동주의 성적표, 육필 원고 등이 보존되어있다. 핀슨홀은 윤동주 시인이 대학시절 기숙사로 이용되던 장소라고 한다. 대학생 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며 다짐했던 그를 떠올리면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나아갈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영상 유현우 인턴기자 tub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