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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 데이트 #1 소공동편 조회수 : 6999



가끔씩 그런 날이 있다. 글이 땡기고 책이 보고 싶은, 감수성이 폭발하는 날이 있다. 그런데 여유롭게 책만 읽으러 가기에는 오늘 날씨가 너무 좋다. 그럴 때엔 작정하고 문학기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이름하여 국문학 데이트. 기자가 직접 다녀와 영상으로 담아보았다.





 이상의 ‘날개’ 속 미쓰코시 백화점 (명동 신세계 백화점 본점)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이상, <날개> 朝光 (1939)


서울 4호선 명동역에 5번 출구로 300m 정도 나오면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있다. 옛 모습을 살리면서 리모델링을 진행한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현재 명품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미쓰코시 백화점으로 자리했었고 한국전쟁 당시엔 미군의 PX로 이용되었다. 여러 역사를 가진 만큼 우리 문학 속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이상의 <날개>의 끝부분에서 주인공 ‘나’는 백화점 옥상에 오른다. 그는 자살을 하려고 옥상에 올라간 것일까? 직접 그 장소에 가서 느꼈던 탁 트인 시야와 하늘을 바라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날개가 생겨 날아보고 싶다는 마음은 지난날을 청산하고 보다 건설적인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었을 것이다. 방학 동안을 허송세월했던 기자의 지난날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속 조선은행 (한국은행)


“어느 틈엔가, 구보는 조선은행 앞에까지 와 있었다. 이제 이대로,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었다. 그러면 어디로― 구보가 또다시 고독과 피로를 느꼈을 때, 약칠해 신으시죠 구두에. 구보는 혐오의 눈을 가져 그 사내를, 남의 구두만 항상 살피며, 그곳에 무엇이든 결점을 잡아 내고야마는 그 사내를 흘겨보고,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조선중앙일보(1934)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약 100m 거리에 한국은행이 있다. 서울의 중심지인 명동은 한국문학 속에서도 주 배경으로 쓰인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구보씨는 경성거리를 배회하면서 당시 이 일대의 모습들을 담아낸다. 이제는 구두닦이처럼 말 거는 이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제 갈 길을 걷고 있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속 경성우편국 (포스트타워)


“참 요사이 무슨 좋은 일 있소. 맞은편의 경성우편국 3층 건물을 바라보며 구보는 생각난 듯이 물었다. 좋은 일이라니― 돌아보는 벗의 눈에 피로가 있었다. 다시 걸어 황금정으로 향하며, 이를테면, 조그만 기쁨, 보잘것없는 기쁨, 그러한 것을 가졌소. 뜻하지 않은 벗에게서 뜻하지 않은 엽서라도 한 장 받았다는 종류의…….”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조선중앙일보(1934)


한국은행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포스트타워가 있다. 구보씨는 경성우체국을 보며 친구에게 뜻밖의 엽서를 받았을 때의 행복감을 생각했다. 요즘은 기프티콘으로 다양한 상품들을 전송할 수 있다. 그런데도 포스트타워에 가보니 소포를 부치기 위해 이곳까지 소중히 들고 온 많은 이용객들이 보였다. 이를 보며 구보씨처럼 생각했다. 아무리 기프티콘이 다양해져도 작은 엽서 한 장, 인화한 사진 한 장 친구에게 건넨다면 더 따뜻한 진심이 전해질 것이다.




④ 이태준의 ‘사상의 월야’ 속 반도호텔 (웨스틴 조선호텔)


“송빈이는 우미관으로 갈까 단성사로 갈까 하는 은주를 데리고 조선호텔로 온 것이다. 전에 윤수아저씨를 따라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로오즈가아든으로였다. 호텔 후원에는 여러 가지 장미가 밭으로 피었는데, 오십 전만 내고 들어오면 꽃구경은 물론이요 이왕직 악대의 음악 연주도 있고, 아이스크림도 주고 나중에는 활동사진으로 금강산 구경까지 하는 것이었다.”


이태준, <사상의 월야> 매일신보(1941)


포스트타워에서 약 300m 정도 걸어 내려가면 웨스틴조선호텔이 있다. 전광용의 <꺼삐딴 리> 결말 부분에서 이인국 박사가 시가를 문채 택시에 타 향하는 곳이자, 이태준의 <사상의 월야>에서 송빈이 은주를 데리고 데이트를 하던 그 장소다. 한국 최초의 호텔로 연애, 문화행사가 이루어지는 낭만의 장으로 그려지던 그 모습이 많이 남아있었다. 영상에도 담긴 환구단 근처의 정원은 옛 모습을 잘 살리고 있어 인물들이 느꼈을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근처 명동 거리와 사뭇 다른 장소로 잠시 앉아 사색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염상섭의 ‘삼대’ 속 황금정 이정목 (을지로 길)


덕기는 회피하듯이 이런 소리를 하며 전찻길로 나서자,

 “대관절 어디로 갈 텐가?”

하고 저녁 먹으러 갈 데를 의논한다.

여기는 황금정 이정목이다.

“타지 말고 좀더 걷세. 본정 삼정목까지.”

“어딘데?”

“좋은 데를 하나 발견하였네. 값싸고 스테키나샨이 있고…….”


염상섭, <삼대> 조선일보(1931)



호텔 근처의 을지로 길은 염상섭의 <삼대> 속 3대인 조덕기와 김병화가 대화하며 걷던 그 장소다. 소설을 읽지 않고 이 장소를 찾는다면 지금은 전차도 없고 자동차가 많이 다녀 여느 도로와 비슷해 보일 것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그들은 전차나 인력거에 타기보다 이 거리를 걸어갔다. 그들과 함께 걷고 있다고 생각해보며 걸음을 옮긴다면 옛 멋을 기억하는 작은 식당들과 소공양복점들을 보일 것이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 거리에서 인물들이 느꼈을 정취를 상상해보길 추천한다.



⑥ 이태준의 ‘사상의 월야’ 속 종현 천주교당 (명동성당)


“아침 미사종이 울리기 전에 천주교당으로 올라왔다. 처음 와보는 데다, 거의 남산 중턱만큼이나 높은 지대여서 장안이 눈 아래 즐비하게 깔린다. 교당은 가까이 와보니 높으다는 것보다는 장엄한 편이다. 서울의 여명은 먼저 이 교당 첨탑에 비치는 것이며, 좌우 남하의 홍예문들은 거기가 곧 천국에 들어가는 문처럼 위엄스러웠다.”


이태준, <사상의 월야> 매일신보(1941)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약 400m 정도 거리에 명동성당이 위치하고 있다. 이태준의 <사상의 월야>에선 송빈이의 연애가 좌절되었을 때 “무엇엔가 의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찾은 장소였다. 그는 신자가 아니지만 명동성당에 새벽부터 찾아간다. 오늘날의 성당 안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외국인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주인공이 지었을 간절한 표정을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송빈이처럼 신자가 아니더라도 명동성당에 찾아가 함께 묵상해보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사진·영상 유현우 인턴기자

tub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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