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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원으로 떠나는 여행 4탄 –양평 용문사 조회수 : 18809


저렴하고 편리하게 갈 수 있으면서도 강원도 못지않은 산세를 자랑하는 곳. 바로 경기도 양평군이다. 양평은 한우와 5일장 등으로 유명하지만 진정한 양평의 명물은 용문산이다

<캠퍼스 잡앤조이>가 대학생들의 힐링을 돕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시리즈 ‘3만 원으로 떠나는 여행’ 4탄에서는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용문산으로 떠난다.

 

글 정유진 기자

 

비용을 가급적 적게 들이고 용문산까지 가려면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을 타야 한다. 경의중앙선은 임진각 방향인 문산역부터 용문산 방향인 용문역까지 총 50개 정류소, 156분이 소요되는 무척 긴 노선이다. 오늘은 약속장소를 경의중앙선은 물론 서울 지하철 2호선5호선과 분당선이 모두 지나는 왕십리역으로 잡아보자.


왕십리역에서 용문역까지는 22개 정류소에 74분이 걸리니 얼추 경의중앙선의 중간 장소를 봐도 좋다. 요금은 구간요금이 추가돼 약 2300원이다. 용문역 출구로 나오자마자 버스 정류장이 있다. 이곳에서 용문산국민관광지(용문사행)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 기다리기가 지루하다면 5분 정도 걸어서 용문시외버스터미널을 이용하면 된다. 다만 여기서 다른 노선의 버스를 타면 요금이 200원 정도 더 나온다. 이 경우 왕복 교통비는 총 5000원 되겠다.


다만 매월 510일은 5일장이 서므로 시외버스터미널에서만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두자. 이왕이면 5일장에 맞춰 가는 것도 좋다. 전통 5일장은 먹거리와 인심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굳이 장날에 맞추지 않아도 용문역 건너편에 매일 서는 약재상가에서는 각종 버섯류나 차 재료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향긋하고 따뜻한 양차를 무료로 시음할 수도 있다.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용문산국민관광지가 나온다.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향토음식점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용문산국민관광지는 천년고찰인 용문사와 동양 최대라는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이곳을 관광하기 위해서는 입장료 2500(성인기준)을 내야 한다.

관광지 입구에는 공원이 잘 조성돼 있다. 입구에서 용문사까지는 천천히 걸으면 약 30분 걸리는데 중간 중간 볼거리가 많다. 특히 당신의 건강은 안녕하십니까?” 라는 조형물이 인기가 많다. 통나무를 세워놓고 통과하게 돼 있는데, 그 폭에 따라 홀쭉-날씬-표준-통통-이러시면 안 됩니다-당신은 외계인등의 등급으로 배치해 놨다. 몸매에 자신 있는 여학생들이라면 평소 관리한 노력에 대한 보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를 지나 용문사 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친환경농업박물관이 있다. 무료관람에 무료강좌도 열리므로 입장료 2500원을 생각하면 들러봄직하다. 등산로의 경사가 조금 가팔라지면서 오른쪽으로 계곡이 보인다. 용문산은 계곡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등산 마니아들은 사람들이 붐비는 국민관광지 쪽보다 산 반대편인 사나사(용문산에 있는 다른 사찰) 쪽 코스를 더 즐긴다고 한다.


사나사는 고려시대에 지어진 사찰로 용문사와 마찬가지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에 속해 있다. 주의할 점은 용문산 계곡은 굽이굽이 맑고 깨끗하며 작은 폭포 등도 많아 장관을 이루지만 산 중심부로 갈수록 계곡물이 매우 깊어지기 때문에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계곡을 감상하며 걷노라면 주변에 한시를 새긴 바위벽들이 나온다. 남학생들이라면 호연지기가 솟아날 만하다. 용문산의 명물 중 하나인 현수교도 만나게 되는데, 이쪽은 용문사 방향이 아니고 암자 쪽 등산로이므로 현수교의 자태에 빠져 무작정 걷다보면 길을 잘못 들 수 있다.

용문사까지는 어르신들도 크게 무리하지 않을 만큼 경사가 완만해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다. 참고로 용문사는 또 다른 천년고찰인 경주 불국사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913(신라 신덕왕 2) 대경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설도 있다. 조선 초기에는 절집이 304칸이나 들어서고 300명이 넘는 승려가 모일 만큼 번성했다고 한다.

특히 대한제국 말기 전국에서 의병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당시 용문산과 용문사는 양평 일대 의병들의 근거지였다. 당시 권득수 의병장이 용문사에 병기와 식량을 비축해 두고 항일활동을 펼치며 일제에 타격을 입혔다. 의병들은 반격에 나선 일본군 보병 25연대 9중대와 용문사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는데, 이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러 사찰의 대부분 적각들이 소실됐다. 지금의 작은 규모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광복 70주년을 맞아 더욱 안타깝고 숙연한 마음이 들게 하는 곳이다.


용문사에 도착하면 압도적 크기의 은행나무에 넋을 잃게 된다. 천연기념물 제30호인 이 은행나무는 높이 42m, 가슴높이 둘레 14m로 수령은 1100년으로 추정된다. 가지는 동서로 28.1m, 남북으로 28.4m 정도 퍼져 있다. 지금은 은행잎이 떨어져 앙상하게 보인다.

동양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이 은행나무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것이 자랐다는 설도 전한다. 조선 세종 때 당상(현 차관급)직첩이 내려졌다 하며, 여러 가지 전설도 깃들어 있다.


특히 일본군이 절을 불살라 버렸으나 나무만은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나라에 큰 이변이 생길 때마다 큰 소리를 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고종이 승하했을 때 커다란 가지가 한 개 부러졌고, 8·15 광복, 6·25 전쟁, 4·19 의거, 5·16 쿠데타 때도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은행나무 주변에는 수많은 소원성취 포스트잇이 달려 있었다. 노란 은행잎 모양의 포스트잇에는 가족의 건강, 수능 만점, 회사의 발전 등 저마다의 다양한 소원이 가득했다.


용문사는 일일관광뿐 아니라 템플스테이도 가능하다. 머리를 식히고 싶은 취준생이라면 고즈넉한 사찰에서 번뇌를 잊어볼 만하다.

용문사의 묘미는 한마디로 볼거리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교통비 5000, 입장료 2500원 등 7500원이 들기 때문에 3만 원이 아니라 식사를 포기한다면 1만 원으로도 넉넉히 즐길 수 있다. 다만, 주말에는 경의중앙선을 이용하는 관광객이 많아 복잡할 수 있다. 팔당양평 등 경유할 곳이 많아 자전거족등산족들도 즐겨 찾는다. 또 귀갓길에는 술에 취해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 만큼 주말보다 주중 여행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