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직업이 궁금하다

[스펙타파] 누가 참스펙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삼채총각’을 보게 하라 조회수 : 30560


고등학교 졸업, 군 입대, 제대 후 호주 유학에 현재는 농부. ‘삼채총각’ 김선영 씨의 한줄 이력이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토익이나 학점을 들이밀 공간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잘나가는 청년 영농인으로 억대 연봉을 올리고 있다. 지금부터 이 글을 읽을 대학생들에게 고한다. ‘삼채총각이 너희를 스펙에서 자유케 하리라.’



김선영 씨

1989년생 청년 영농인.

2016년 <삼채총각 이야기> 출간


‘삼채총각’으로 여러 매스컴에 알려진 청년 농사꾼 김선영 씨의 과거 이야기를 잠시 해보겠다. 고교 졸업 후 그는 대학 대신 바로 논산 훈련소로 들어갔다. 조교로 복무하면서 유학이라는 꿈을 키웠다. 제대 후엔 유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곧장 아르바이트 전쟁에 뛰어들었다. 아침엔 백화점에서 가구를 나르고 밤늦게는 호프집에서 서빙하며 5개월 간 무려 4천만 원을 모았다. 


이 돈을 들고 그가 간 곳은 호주의 브리지번. 관광산업이 발달한 호주에서 호텔관광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주의 한 학기 학비는 대략 천만 원. 그동안 흘린 다섯 달의 땀으로는 턱도 없었다.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루 일과는 대략 이랬다. 평일 오전, 언어가 필요 없는 청소부로 하루를 시작해 일이 끝나는 대로 바로 학교로 갔다. 오후 4시에 수업이 끝나면 새벽 1시까지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틈이 나면 또 다른 일거리를 찾기 위해 이력서를 뿌렸다. 3년간 인력거꾼, 클럽 알바까지 20여개의 직업을 거치면서 매달 500만원씩 또 벌었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는 빡빡한 일상, 모든 것은 호텔관광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가 별안간 삼채농부가 되다니. 김선영과 삼채의 첫 만남이 몹시 궁금해졌다.



김선영 씨가 직접 재배하고 있는 삼채밭.



“유학 후 농사짓는다니 소박하대요. 땅이 1만평인데”


“수업시간이었어요. ‘발전가능성 있는 사업아이템’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교수님이 농업을 제시하셨어요. 호주는 ‘팜(farm) 비즈니스’라고 해서 농업과 사업이 결합한 경우가 많거든요. 순간 ‘이거다’ 싶었죠.”


그때 마침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삼채를 수입하는 아버지 친구로부터 삼채 이야기를 들었는데 호주에도 이 작물이 있는지 조사를 해 보라는 것.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주변 친구들에게도 묻고 자료도 찾아봤다. 그러다 점점 삼채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삼채는 파와 마늘, 고추를 섞어 놓은 맛이에요. 뭐가 생각나지 않으세요? 바로 고기에요. 삼채장아찌를 담가서 고기와 같이 먹으면 맛이 끝내주거든요. 고기를 좋아하는 한국인 입맛에 딱인 거죠. 게다가 국내에 아직 수입업자가 많지 않아서 이참에 제가 선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귀국 후,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3억을 대출받아 3000평짜리 땅을 매입했다. 뭐든지 열심히 하는 성격이었기에, 삼채재배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매일 새벽5시에 일어났다. 땅을 갈고 비닐을 씌우고 물도 주고 병도 체크했다. 허리를 구부려 잡초 뽑는 것은 기본. aT센터 등에서 운영하는 관련 교육도 수강했다. 365일 연한 이파리를 만들기 위해 관수시설도 개발했다. 





그렇게 마침내 첫 작물을 수확했다. 하지만 대참패. ‘재배만 하면 알아서 사갈 것’이라던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팔리지 않은 절반의 삼채가 썩어 문드러져버렸다.


진짜 문제는 판로였다. 그 뒤로 다시 일 년, 이번엔 개인 블로그에 공을 들여 하루 5000명의 방문자도 끌어 모았다. 하지만 이런 직거래로는 한계가 있었다. 대기업 식품업체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십(十)고초려’는 기본, 귀찮은 잡상인 취급에도 웃어 보여야 했다. 사실 호주에서 300장이 넘는 이력서를 뿌려댔던 그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고 또 갔다. 마침내 한식뷔페 등 대기업 사업장 납품기회가 주어졌다.  


3000평이었던 땅은 3년 만에 1만1000평으로 세 배 넘게 불었다. 돈을 버는 대로 땅부터 설비까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현재 연간 순수익은 억대. 이중 일부로 정부지원금을 갚아도 웬만한 직장인의 연봉보다 훨씬 높다.  


나는 농부가 아니라 사업가다


28세. 주변 친구들이 한창 자기소개서를 쓰고 인적성검사를 공부하며 취업에 매진할 시기이기도 하다. ‘직장인’에 대한 미련은 없을까.


“전 더 치열하게 살고 싶어요. 처음에 제가 유학을 마치고 농부가 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 저를 부러워하죠. 물론 그러면서도 정작 행동은 못하지만 말이에요.”


늘 남 밑이었던 알바인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도 그를 농부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어차피 대기업도 공무원도 안전한 곳은 없으니 차라리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게 그의 확고한 철학이다. 

2주 전에는 이런 창업 노하우를 담은 <삼채총각 이야기>를 출간했다. 요즘은 출판기념회와 강의를 나가기도 바쁘다. ‘2016년 목표’의 맨 윗줄에 있던 게 거짓말처럼 실현됐다.





또 다른 꿈도 있다. 2년 안에 삼채와 다른 채소를 엮어 강남 일대에 여성전용 샐러드바를 만드는 것. 만약 장사가 잘 돼서 분점이 생기면 입구마다 ‘김선영’ 전신 선간판을 세워놓을 예정이다.


하지만 농업인으로서 그의 최종 꿈은 농업타운을 만드는 것이다. 100만평짜리 땅 위에 현대인이 농업으로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휴식처를 만들고 싶다. 녹색을 보면서 위로 받고 직접 작물을 재배할 볼 수도 있다. 나중에는 국가의 복지제도와 결합해 금전적인 혜택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당찬 목표까지 세웠다.


문득, 호주에서 힘들게 호텔관광학을 배워놓고 왜 굳이 다른 길을 가야 했는지 궁금해졌다. “절대 다른 게 아니에요. 1차 산업인 농업은 곧 문화나 관광과의 융복합 사업에 좋은 소재가 될 거예요. 즉 농업이라는 밑바탕에 호주에서 배운 호텔관광을 활용하면 엄청난 시너지효과가 발생하는 거죠.”


“스펙 시대는 지났어요. 이제 에너지 시대입니다. 에너지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을 이끌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접니다.”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