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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ies] 영웅을 만든 ‘고난의 여행’ 조회수 : 641
1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여전히 미움을 받는다. 그의 인생도 끝이다.”

그러나 이 말을 한 주인공 공자의 마흔 살 시절은 쓸쓸했다. 정치적 이상과 야망은 높았지만 아무도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공자는 첩의 아들로 태어나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온갖 마음고생을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인생은 대부분 좌절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제자들에게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장저와 걸익이 밭을 가는데 공자가 그곳을 지나다가 자로를 시켜 나루터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게 했다. 장저가 자로에게 물었다. “저기 수레 고삐를 잡고 있는 사람은 누구요?” 자로가 공자라고 말했다. 그러자 장저는 “그가 벌써 나루터가 어디에 있는지 알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제자를 이끌고 이상 정치를 펴고 싶다며 천하를 주유하던 공자를 조롱한 것이다. 물론 그의 여행은 노나라의 권력에 환멸을 품고 떠난 ‘정치적 망명’이었지만 세간에서는 공자를 좋게만 보지 않았던 것이다.


20, 21세 때 공자는 두 차례 낮은 관직을 맡았다. 처음 맡은 일은 가축관리였다. 그 당시에 제사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제사에는 반드시 살찐 소나 양이 필요했다. 그 가축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것이다.

다음으로는 창고의 물품을 관리하는 창고지기가 됐다. 신분이 낮은 공자에게 높은 자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공자는 “나는 어린 시절 가난하고 비천하여 먹고살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다”고 회고했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것이 제자를 가르치는 ‘공자학교’였다.

공자는 35세 때 첫 여행에 나서 제나라를 방문해 경공을 만났지만 안영의 반대로 등용되지 못했다. 1년 정도 머물다 귀국했다. 46세 때는 노자를 만나러 또 여행에 나섰다. 주나라 수장실의 사(史)를 지낸 노자를 만난 공자는 그를 용에 비유하며 예를 다했다. 하지만 노자는 공자를 비아냥거렸다.

공자는 51세 때 중도재(노나라의 변경도시 중도의 장관직) 벼슬을 받고 정치에 뛰어들어 사구(법무장관)를 거쳐 대사구(재상)에 올랐다. 나라가 번성하자 이웃 강대국인 제나라 경공이 미인 80명으로 미인계를 썼다. 노나라 정공은 여기에 넘어갔고 결국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공자는 56세 때 천하 주유에 나서 68세까지 제자들과 함께 13년 동안 여행을 했던 것이다.

공자를 보면 여행만큼 값진 공부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동수단과 숙박시설이 발달한 요즘에도 1년을 여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하물며 2500년 전 공자는 13년 동안 여행을 했다. 그런 헝그리 정신과 도전 정신이면 무엇이든 못할 게 없을 것이다. 만약 공자가 긴 여행길에 나서지 않았다면, 과연 그의 사상이 지금과 같이 대접을 받았을까.

공자는 13년을 여행하면서 정치와 벼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공자는 만년에 “나는 정치할 그릇이 아니다”고 했다. 그가 13년 여행을 통해 얻은 결론은 자기의 분수를 안 것이다.


2 “로마의 쇠퇴는 제국의 거대함에서 비롯된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일이었다. 번영이 쇠퇴의 원리를 무르익게 한 것이다. 정복 지역이 확대되면서 파멸의 원인도 증가했다. 그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인위적인 기둥이 제거되자마자 이 거대한 건축물은 자체의 무게 때문에 무너졌다.”

이는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쇠망사’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제국의 몰락에 대해 이처럼 미려한 문장으로 분석한 글이 또 있을까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글이다. 1737년 생 영국 출생의 기번은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10세 때 동생을 낳다 죽게 되어 이모의 손에 컸다. 이모가 독서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어 독서광이 되었고 아버지를 따라 여행하면서 고서들에 매료되었다. 기번은 12세 때 지식이 가장 많이 성장했다고 고백할 만큼 조숙했다.

30세 때인 1767년 기번은 로마를 여행했는데 로마의 폐허를 보면서 도취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그는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올라 영감을 얻어 ‘로마제국쇠망사’를 구상했고 1772년 저작에 착수했다. 1776년 1권을 출간했고 15년 후인 1787년에 마지막 6권을 탈고했다. 기번에게 로마 여행이 없었다면 불후의 명작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3 “실크로드에서 도둑은 영원한 위협이었다. 도둑들은 몰래 숨었다가 대상 행렬을 기다려 그들을 덮치고 봇짐과 짐승들, 금 등을 훔치고 때로는 목숨까지 빼앗았다. 도둑들 눈앞으로 매일 지나다니는 비단과 향료, 그리고 교역물은 탐욕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들이었으리라.”

이 인상 깊은 구절은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실크로드 여행기인 ‘나는 걷는다(1권 273~4쪽)’에 나온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62세의 나이로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1만2000㎞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4년에 걸쳐 여행을 했다. 전 구간을 걷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결코 자동차 등을 이용하지 않았다. 불가피하게 자동차를 타면 다음날 자동차를 탄 그 자리로 되돌아와 걸었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기간을 정해 단 1㎞도 빼먹지 않고 걸어서 실크로드를 여행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신문과 잡지 기자로 활동한 후 은퇴한 그는 도보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을 재활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뿐 아니라 프랑스 비행 청소년들의 삶을 돌보는 재단을 만들었고 이들과 함께 도보여행을 하며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부축하고 있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올리비에는 16세 때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외판원, 항만 노동자, 토목공, 웨이터 등 손대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아마도 이러한 도전 정신이 62세의 나이에 실크로드 종단여행에 나서도록 했을 것이다.

4 “사막에서 부드러운 가루모래인 ‘프슈프슈(le feche-feche)’에 빠질 때 타이어 바람을 빼야 벗어날 수 있다. 인생에서도 정체 상태에 있을 때에는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내야 다시 나아갈 수 있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쓴 스티브 도나휴는 유럽을 여행하던 20대의 어느 날, 파리의 매서운 추위에 질려 그해 겨울을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서아프리카 해변에서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비행기 표를 살 돈이 없어 남의 차를 빌려 타고 시작한 여행은 알제리에 이르러 세계 최대 사막인 사하라 사막 종단으로 이어진다.

따뜻한 남쪽 해변으로 간다는 목표 외에는 아무런 계획도 상세한 일정도 없이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며 수십 일간 길을 찾아 헤매면서 그는 불확실한 인생의 사막을 헤쳐갈 지혜를 얻게 된다. 사하라 사막 여행은 세계적 컨설턴트로서 독창적인 변화 관리 모델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했다. 그는 개인과 조직의 변화, 팀워크 혁신, 재능 발견 등에 관해 조언을 들려주는 컨설턴트 및 연사로 활동하고 있다.

5 “심리적인 미성숙 상태를 박차고 자기 책임과 자기 확신 위에서 영위되는 삶의 현장으로 나오려면 죽음과 재생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보편적인 영웅 여행에서 기본이 되는 모티프다. 이 여행을 마쳐야 한 인간은 어떤 상황을 떠나 삶의 바탕이 되는 것을 찾아내고는 더욱 풍성하고 성숙한 인간 조건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조셉 캠벨은 ‘신화의 힘’에서 영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영웅이라는 말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영웅의 삶이 아니더라도, 성공을 갈망한다면 모든 이가 스스로 ‘영웅 여행’을 감행해야 하지 않을까.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 겸 자녀경영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 다수의 책을 냈다.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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