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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탐구 ‘기업 vs 기업’⑫] 자수성가형 박성수 회장 vs 오너 3세 경영인 이웅열 회장 조회수 : 7400

[취업 탐구 ‘기업 vs 기업’⑫] 이랜드월드·코오롱인더스트리


[캠퍼스 잡앤조이=강홍민 기자] 최근 브랜드 매각으로 몸집 줄이기에 나선 이랜드의 행보에 업계의 관심이 쏠려 있다. 그만큼 이랜드의 움직임이 국내 패션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의류사업을 시작한 지 38년째를 맞는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의 창업스토리는 업계에서 유명하다. 


청년시절, 아픔을 기회로 바꾼 박성수 회장 


1953년 출생인 박 회장은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취업을 준비하려했으나 근육무력증이라는 희귀병을 앓아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박 회장이 스물여덟 되던 해인 1980년, 옷가게가 즐비했던 이화여대 앞에 ‘잉글런드’라는 보세의류가게를 열게 된다. 두 평짜리 옷가게로 시작한 박 회장은 수출하고 남은 보세 의류를 떼어와 판매하면서 남다른 사업 수완으로 가게를 확장해나갔다. 이대 일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박 회장은 ‘잉글런드’를 ‘이랜드’로 상호명을 변경하고 법인으로 설립했다.


박 회장의 사업 아이디어도 남다르다. 프랜차이즈 후드티를 뜻하는 ‘맨투맨’이라는 용어를 박 회장이 만들었고, 구김이 안가는 ‘링클프리’ 면바지도 이랜드가 최초로 상품화했다. 유명한 중국 진출 일화도 있다. 


중국 법인 설립 당시 박 회장은 “인사고과 A를 받은 직원만 중국으로 보내라”, “2~3년만 있다 올 생각하지 말고 아예 중국인이 돼라”라며 직원들에게 경영지침을 밝히기도 했다. 


경영에 대해선 한 발 앞선 행보로 업계 선두자리를 지킨 박 회장의 동생인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 역시 이랜드 성장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그룹 내 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이화여대 섬유예술을 전공하고, 1980년에 DECO 명동단독매장을 열고 오빠인 박 회장과 함께 패션업계 발을 디뎠다. 박 부회장 역시 오빠인 박성수 회장만큼이나 업계에 잘 알려져 있다. 박 부회장은 이랜드 창업 초창기에 일이 너무 바빠 출근 준비시간을 줄이기 위해 모자를 쓰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20여 년 동안 그녀가 구입한 모자만 해도 수 십 개가 넘을 정도. 여기에 졸음을 참기 위해 20년 넘게 회사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일도 직원들 사이에선 유명한 일화다.  


이랜드 주요 임원진 프로필

 성명

성별 

출생년도 

직위 

주요경력

 박성수 

남 

1953년 3월 1일

그룹 

회장 


서울대 건축공학과 졸

1986년 이랜드 대표이사
1998년 이랜드그룹 회장

박성경

여 

1957년 1월 3일 

그룹 

부회장 


이화여대 섬유예술학과 졸
1991년 제롤라모 대표
1994년 이랜드월드 대표, 디자인총괄

2006년 이랜드그룹 부회장 


 정수정

여 

 1972년 3월 6일

이랜드월드
대표이사 


고려대 가정교육학과

1996년 이랜드그룹 입사

2003년 로엠 브랜드장

2008년 이랜드 차이나 로엠 브랜드장

2014년 이랜드월드 글로벌 미쏘 BU 본부장

2017년 이랜드월드 대표이사 




박 회장의 파격 인사 역시 이랜드뿐만 아니라 패션업계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대표적으로 지난 2월 이랜드월드 대표이사로 정수정 이랜드그룹 이사가 취임했다. 정수정 대표는 1996년 이랜드에 입사해 2003년 로엠 브랜드장을 거쳐 2008년 이랜드 차이나 로엠 브랜드장을 담당했다. 그녀는 박 회장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일본 사업까지 총괄하면서 2012년 12월에 SPA브랜드 미쏘 BU장으로 선임됐다. 이듬해 3월 일본 미쏘 1호점과 4월 중국 매장을 오픈하기도 했다. 

이랜드그룹은 정수정 대표를 비롯해 여성임원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랜드월드 8명(28.6%), 이랜드리테일 5명(31.3%)이 여성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트렌디 경영으로 재계 선두 노리는 이웅열 회장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이웅열 회장, 박동문 사장, 안태환 전무의 3인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된다. 이웅열 회장은 그룹 지주회사이니 코오롱의 대표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안태환 전무는 지난 2월 대표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안 대표는 전자재료2BC장, 코오롱 중앙기술원장을 역임한 인물로 코오롱인더의 R&D분야를 집중적으로 맡게 된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주요 임원진 프로필

 성명

성별 

출생년도 

직위 

주요경력 

 이웅열

남 

1956년 4월 18일

대표이사

회장 


고려대 경영학과 졸

1991년 코오롱그룹 부회장
2015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코오롱그룹 회장

 박동문

남 

1958년 7월 16일 

대표이사 

사장 


서울대 조선공학과 졸
2005년 코오롱 인도네시아 법인 CFO
2010년 코오롱글로텍 대표이사 

         코오롱아이넷 대표이사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대표이사 사장 


 안태환

남 

1956년 7월 24일 

 대표이사

전무


성균관대 섬유공학과 졸

1982년 코오롱 기술연구소 입사

2000년 코오롱 신사업개발실장 

2015년 코오롱인더스트리 중앙기술원장

2017년 코오롱인더스트리 대표이사 겸 중앙기술원장



창립 60주년을 맞은 코오롱인더는 첨단 섬유, 패션 브랜드 등 사업영역을 확장해 매출 5조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패션·유통사업은 국내외 시장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 남성복 브랜드 ‘캠브리지멤버스’ 등 25개 브랜드로 지난해 매출 1조 1372억 원을 기록했다. 





오너 3세대 경영인인 이웅열 회장은 조부인 창업주 이원만 선대회장, 부친인 이동찬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코오롱그룹을 이끌어 오고 있다. 최근 이 회장은 17년 동안 지속 투자해 온 바이오신약 ‘인보사’를 개발해 경영인으로서 리더십을 다시금 평가받기도 했다. 


1956년 1남 5녀 가운데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와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1977년 코오롱에 입사했다. 이후 뉴욕지사와 도쿄지사에 근무하면서 경영수업을 받은 이 회장은 코오롱 그룹기획조정실장을 거쳐 2년 만에 부회장에 올랐다. 1996년 40세의 나이에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이 회장은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그해 3월과 7월 각각 코오롱메트생명보험과 코오롱전자 등을 매각하면서 26개 계열사를 15개로 줄였다. 이후 2000년 대기업 중 처음으로 그룹 계열사에 ‘자율 복장제도’를 도입했고, 2004년 과천사옥으로 이전했다. 


이 회장은 기존 코오롱 조직문화에 디지털경영을 접목한 ‘디지털플러스경영’을 내세워 그룹의 변신을 꾀하기도 했다. 화학, 첨단소재, 바이오건설, 패션·유통 등 3대 축을 바탕으로 재계 순위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섬유산업 위상이 축소되면서 2015년 30대 그룹 밖으로 밀려났지만 최근 2년 만에 재계 순위 30위로 복귀했다. 


이 회장은 청년들에게도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2015년 사재 10억 원을 출연해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했고, 이듬해 이노베이스 회사를 설립해 코오롱그룹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이노베이스는 청년창업을 육성하기 위한 벤처캐피탈로 네이버와 다음 출신 개발자들이 만든 플랜티에 2억원, 퀵서비스 중개회사인 퀵퀵주식회사에 1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한편 올 초 경기도 과천 코오롱타워 대강당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이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커넥트(Connect)와 퓨처(Future)를 이어 만든 ‘커넥처(Connecture)’를 올해 경영지침으로 선언한다”며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미래 먹거리 발굴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임직원들에게 전했다. 이 회장은 이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된다는 뜻을 가진 논어의 구절 각득기소(各得其所)를 인용하면서 “어느 회사, 어느 부서, 어느 직급에 있든 각자의 몫을 온전히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지난 몇 년 동안 마음가짐을 변화 시켰고, 이제는 실행이 중요한 때다. 9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려줄 타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준비 해 달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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