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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투자증권:주성일] 한국투자증권 주성일 씨, 無토익으로 증권사 합격 조회수 : 1917

“왜 토익 점수가 없습니까?”

한국투자증권 신입사원 주성일 씨가 최종 면접장에서 받았던 질문이다. 중위권 대학 출신에 학점도 높지 않고 어학연수 경험도 없다. 스펙으로만 보면 절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지원자. 하지만 그는 당당했고, 고학력 고스펙 지원자들도 줄줄이 낙방하는 증권사 입사 시험에서 단번에 합격 통지서를 거머쥐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확고한 목표가 생기기 전까진 주성일 씨 역시 진로를 고민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새내기 시절 광고 동아리에 들어가 잠시 광고인의 꿈을 키우기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뒀다. “대학 생활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뚜렷한 미래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는 그는 1학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결심했다. 제대 후에도 바로 복학하지 않았다.

“아무런 목표 없이 공부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 부모님께 ‘확신이 서면 학교에 가겠다’고 말씀 드렸죠. 다행히 제 뜻에 맡겨주셨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1년의 휴학 기간. 그는 주위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의 신념을 따랐다. “진로를 구체화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던 시기예요. 다행히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뚜렷한 목표를 정할 수 있었죠.”

군대에서 우연히 읽은 재테크 서적 한 권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관심조차 없던 재테크 분야에 흥미를 붙이게 된 것이다. 군 생활 틈틈이 재테크 관련 서적을 구해 읽었다. 제대 후엔 증권 계좌를 개설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투자 자금을 모았고 어느 정도 자금이 모였을 때 투자를 시작했다. 책에서 봤던 것들을 실전 투자에서 하나씩 실행해나갔다. 2007년부터 쌓아온 투자 경험은 금융인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견고한 반석이 됐다.

1년 남짓 지났을 무렵 글로벌 금융 위기가 찾아왔다. 그 역시 꾸준히 모아온 500여만 원의 돈을 잃었다. 그러나 시련은 꿈의 강도를 높여줬다. “깡통을 차고 나서 오히려 증권맨이 되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저 같은 개미 투자자들이 한순간에 돈을 날리지 않도록 그들을 관리해주는 증권사 직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증권사 직원이 서민 고객을 관리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위험에 빠트린다는 편견도 깨고 싶었죠. 그때의 일이 증권사 입사에 강한 동기 부여가 됐습니다.”

뚜렷한 목표를 가슴에 새긴 뒤였기에 복학 후 거침없이 행보를 이어갈 수 있었다. 2009년 학교로 돌아간 그는 먼저 교내 투자동아리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의 실전 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동아리 펀드매니저로 활동했다.

소규모였지만 운용 자금을 모으고, 종목 분석을 하고, 살 종목과 팔 종목을 판단해 펀드에 편입시키는 과정을 거치며 금융시장의 원리를 배우고 투자 노하우를 익힐 수 있었다.

증권사 입사를 목적으로 블로그 운영도 시작했다. 월말이 되면 그달의 투자 결과를 분석한 결산 포스트를 블로그(www.cyworld.com/joosblog)에 공개했다. 관심 가는 기업의 분석 자료를 PDF 파일로 만들어 올리기도 하고, 투자 심리 분야의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리기도 했다. 꾸준히 운영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았다.

당시 그의 블로그 첫 화면에는 ‘주스자산운용 대표’라는 프로필이 올라와 있었다. 자신의 성을 딴 이름으로 1인 기업을 만들고 스스로 증권사 CEO가 됐다는 생각으로 활동했던 것.

“처음엔 블로그에 들어온 친구들이 ‘이게 뭐냐’며 비웃기도 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산운용사 대표라고 절 소개했죠. 또 블로그 방문객이 늘면서 그분들이 남겨준 응원 댓글을 보고 힘을 얻기도 했어요.”


합격 전부터 이미 증권사 영업맨!

대학생 대상 모의투자대회에 나갔을 때 그의 ‘영업사원 마인드’는 빛을 발했다. 실제 증권사 직원이라는 생각으로 투자하다 보니 가벼운 종목엔 쉽게 투자할 수 없었다는 것. “무겁고 추천할 수 있을 만한 종목에만 투자했어요. 수익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둔 거죠.”

투자대회 마지막 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날이 되면 사람들이 입상 욕심에 이것저것 하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 가만히 있었는데, 앞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싸우다가 밀려나 어부지리로 제가 2위가 됐어요. 운이 좋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또한 리스크 관리인 거죠.”

모의투자대회 수상 경험은 증권사 인턴십으로 이어졌다. 한 달간의 짧은 인턴십 기간 동안 그가 어필한 것은 근면성실함이었다.

“증권사에서는 활발한 성격의 지원자를 선호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이에요. 처음부터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중엔 어떻게든 찾게 되는 직원이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출근은 무조건 일찍 하자는 목표를 정했죠. 인턴 과제 중 하나였던 모의투자대회에서도 전체 1등을 했어요.” 최선을 다한 결과 인턴십 후 같은 지점에서 촉탁사원으로 발탁되는 기회를 얻었다.

증권사에서 실무 경험을 쌓는 동안 토익이나 학점 등 스펙 쌓기에 들어가는 노력은 최소화했다. “학력이 특출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들처럼 학점이나 영어 점수에 초점을 맞춰서는 차별화가 안 될 것 같았어요. 학점은 기본만 지키자는 마음으로 했고, 자격증도 ‘금융 3종’이라 불리는 기본 자격증만 취득했어요. 토익은 중요도에 밀려 계속 보지 못했고요.”

결국 최종 면접에 올라갈 때까지 토익 점수가 없었다. 하지만 주 씨는 “취업 스트레스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뚜렷한 목표와 동기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토익 성적을 지적받았을 때도 그는 “영어의 중요성은 알지만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우선순위에서 잠시 뒤로 미뤘다”고 당당하게 답했다.

최종 면접에서 그가 받은 또 하나의 질문은 ‘왜 세 곳에만 지원했느냐’는 것이었다. 금융권 입사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보통 증권사와 은행을 모두 지원하는데 주 씨는 상반기 채용을 진행한 증권사 세 곳에만 지원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준비해왔기 때문인지 언젠간 증권사에 꼭 갈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사장님이 왜 세 곳에만 지원했느냐고 물으시기에 ‘이번에 무조건 합격한다 생각하고 지원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면접에선 인턴십, 홍보대사, 투자대회 경험 등 그가 직접 겪은 일에 대한 질문이 주로 나왔다. 준비를 따로 하지 않아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다. “최종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도 감격스럽기보다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합격에 결정적인 요소가 있었다기보다 제가 해온 여러 활동이 합쳐지면서 ‘증권사 영업 직원이 되려고 준비했구나’ 하는 모습이 드러났던 것이 합격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입사 준비 과정은 남들과 세 가지 측면에서 달랐다. 첫째 진로 탐색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 둘째 남들이 따라가는 스펙 대신 자신만의 실무 경험을 쌓았다는 것, 셋째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을 모두에게 공개했다는 것이다.

“저는 자격증 하나도 없을 때부터 한국투자증권에 가겠다고 계속 이야기하고 다녔어요. 설혹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잃을 건 없다고 생각했죠.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기고, 주변에 계속 이야기하고 다녔더니 언젠가부터 제가 말한 그대로 꿈에 다가가 있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꼭 꿈을 이루겠다는 마음가짐, 그것인 것 같습니다.”


글 김보람 기자 bramvo@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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