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물

[직업의 세계] 안주휘 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드라마 속 세련된 정장과 높은 하이힐? 미술관 큐레이터에겐 모두 사치죠” 조회수 : 1513

[캠퍼스 잡앤조이=김예나 기자] 잘 차려입은 세련된 정장과 높은 하이힐, 화려한 전시장을 거닐며 가리키는 곳마다 작품이 걸리는 ‘큐레이터(curator)’의 모습을 상상했다면 착각일지 모른다. 드라마에 나오는 수많은 직업이 그렇듯 ‘큐레이터’ 역시 드라마 속 모습과 실제가 조금 다르다. 안주휘(35) 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미술관의 빈 공간을 새롭게 구성하는 일을 하는 것은 정신없이 바쁘고, 수많은 변수를 겪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과정의 연속”이라며 “그렇다 보니 큐레이터가 근무 중 하이힐을 신는 것은 사치”라고 웃어 보인다. 예술가의 언어를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재해석해 전달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역할이라고 강조하는 안 수석 큐레이터. 경복궁 옆 통의동 주택가에 위치한 대림미술관에서 그를 만났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전시팀장)로 일하고 있다. 이화여대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술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은 후 대림미술관에서 9년째 근무 중이다.”


-미술관에서 큐레이터의 역할은 무엇인가

“큐레이터는 1년에 두 번 정도 개최되는 기획전을 위해 전시를 기획하고 설치하고 오픈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담당한다. 수석 큐레이터는 담당 큐레이터,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와 함께 전시의 전반적인 진행 과정을 핸들링 한다.”


-전시를 기획하고 설치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우선 수많은 리서치와 연구를 통해 1~2년 뒤에 있을 전시의 주제와 작가를 잡는다. 2년 후 전시를 미리 기획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미래의 트렌드와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 혹은 주제가 선정되면 작가 섭외에 나선다. 전시 콘셉트와 전시 작품, 디스플레이 등 작가와의 상의 끝에 합의가 되면 작품을 들여오고 작품 상태를 체크한 후 작품을 설치하게 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현재 ‘하이메 아욘,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Jaime Hayon: Serious Fun)’ 전시가 진행 중이다. 전시에 대해 소개해 준다면

“‘하이메 아욘,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스타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의 국내 첫 개인전이다. 전시를 준비하기까지 1년 6개월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디자인, 가구, 회화, 조각, 스케치부터 특별 제작된 대형 설치작업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로 이뤄져 있다. 대림미술관의 경우 기존의 어려운 추상예술이나 파인아트 쪽보다는 대중과 친숙한 장르를 다루는 것이 목표여서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 특히 그의 작품 하나하나에는 숨겨진 이야기와 독특한 캐릭터가 들어있다. 이런 점에 포커스를 맞춰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에 귀 기울여 보면 더욱 재밌게 전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전시를 기획하는 데 본인만의 원칙과 기준이 있나

“대림미술관의 비전은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이다. 대중들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자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미술을 전혀 알지 못 하는 사람도 미술관에 발을 들일 수 있는, 흥미와 의지를 유발하는 전시를 진행하고자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유명하지만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은 작가들, 트렌드로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선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대중에게 쉬운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큐레이터는 예술가의 언어를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재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작가와 작품을 바꿔주는 것이 큐레이터의 역할이다. 그런 부분에서 항상 대중의 입장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전시’라는 포맷 안에서 어떤 새로운 경험을 대중에게 줄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해왔다. 하지만 트렌드의 변화가 빠른 오늘날에는 유행과 관심사가 수시로 바뀌고, 해외에서 본 콘텐츠를 국내에서 접할 기회도 많아졌다. 새로운 작가, 새로운 주제를 찾는 데 한계도 느껴진다. 이에 요즘은 아예 ‘전시’라는 포맷 자체를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조만간 더욱 새로운 전시를 선보이고자 하니 기대 바란다.(웃음)”


-기억에 남는 전시나 에피소드가 있나

“모든 전시 하나하나가 수많은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웃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전시는 2017년 진행한 토드셀비 ‘즐거운 나의 집’이다. 이 작가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전시를 위해서는 아티스트라고 명명할 만한, 아티스트라는 정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린 아티스트가 아니더라도 아티스트의 범위를 넓혀가는 작가에 흥미가 있다. 토드셀비가 그랬다. 


그는 유명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촬영한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 본인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인상과 이야기를 일러스트로 그리며 본인의 언어로 바꿔냈다. 아티스트의 범주를 넓혀가고 있는 인물이었다. 크리에이티브함은 넘쳐나지만 전시 경험이 없다보니 프로패셔널한 부분은 미흡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그렇기에 큐레이터의 전문성과 그의 창의력이 만나 시너지를 내며 좋은 전시를 진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대중들도 많이 사랑해줬다. 이 전시를 기점으로 2030세대였던 주 관람층이 남녀노소로 넓어졌다.”





-큐레이터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다. 하지만 ‘아티스트’로서의 재능은 없었다.(웃음) 대학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하며 배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예술과 접목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다, 예술과 대중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하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갖기로 결심했다.”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나

“학창 시절부터 문화예술과 관련된 많은 활동을 했다. 학교를 다니며 안산의 경기도미술관에서 전시장 지킴이 아르바이트를 했고, 해외의 한 미술관에서 무급으로 아르바이트도 했다. 미술관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사람들은 어떤 것을 좋아하고 미술관에서는 그들에게 무엇을 제공하는지 등 현장 업무를 익힐 수 있는 기회였다. 졸업 후에는 고양문화재단의 전시사업 팀에서 어시스턴트로 1년 동안 일하다가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고, 26살에 대림미술관에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취직했다. 3~4년 동안은 어시스턴트 신분으로 일했고, 이후 큐레이터, 시니어큐레이터를 거쳐 수석 큐레이터를 맡게 됐다.”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인턴이나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시절에는 보조의 역할이다 보니, 전시의 주제나 작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하지만 나는 전시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일에 대한 애정으로 그 시간을 버텼다.”


-큐레이터로서 일할 수 있는 자신만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큐레이터 업무에는 수많은 변화가 있다. 매번 다른 작가와 다른 전시를 하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변수의 연속이다. 일정한 업무 패턴이나 프로세스 안에서도 매번 각기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같은 일이 하나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내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다. 매번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웃음)”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

“정말 많다.(웃음)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큐레이터는 작가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시를 통해 대중과 작가 사이를 연결해주는 브릿지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자신만의 예술성과 대중들이 관심 있고 보고 싶어 하는 콘텐츠가 다른 경우가 많은데, 이 사이에서 양쪽의 니즈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큐레이터는 작가를 잘 설득시켜 작가의 최대치 능력을 발휘시키면서도 대중들의 수준에도 맞춰나가는 긴밀하고 긴 소통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또 중요한 것은 ‘책임감’과 ‘오픈 마인드’다. 하나의 전시를 기획하기 위해 긴 시간을 긴 호흡으로 준비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집요함과 집념, 책임감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오픈 마인드’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뜻한다. 앞서 말했듯 큐레이터 업무에는 수많은 변수가 있는데 오픈 마인드를 가져야만 각기 다른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이와 함께 자신만의 철학과 스타일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 주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영역까지 수용하려는 태도도 필요하다.”


-앞으로의 목표는

“대림미술관은 지금까지 늘 대중들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해왔듯이, 앞으로도 대중들에게 더욱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대림미술관이 새로운 ‘phase 2’를 여는 데 선두 역할을 할 수 있는 전시를 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다. 개인적으로는 이후에 대림미술관에서 배운 경험과 실무 능력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다.”


-큐레이터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한 마디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지만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절대 버텨낼 수 없을 것이다.(웃음)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많다. 예술가의 어려운 언어를 대중들에게 편하게 전달한다는 의미를 찾아 흔들리거나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의지를 가졌으면 한다.


또 다방면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큐레이터는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누구보다 앞서 새로운 것을 소개해야 한다. 예술의 가능성과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이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고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면, 다방면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낀다면, 당장의 전시에 반영되지 않더라도 나의 재산이 되어 언젠가는 활용할 수 있는 나만의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yena@hankyung.com

사진=이승재 기자

나의 생각 Good Bad

기사에 대한 의견 (0개)

의견쓰기
댓글 : 0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