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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첫인상을 결정짓다, 민은정 브랜드 버벌리스트 조회수 : 3341

[캠퍼스 잡앤조이=남민영 기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슬로건 ‘Passion. Connected. 하나된 열정’과 카누, T.O.P, 오피러스 등 누구나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슬로건과 브랜드명을 만든 민은정 인터브랜드 전무.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브랜드 버벌리스트인 민 전무는 이름이 가진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브랜드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이다. 좋은 이름이 브랜드의 성공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하는 민은정 전무에게 수많은 히트 브랜드를 탄생시킨 비법을 물었다.



△ 뛰어난 브랜드 버벌리스트로 손꼽히는 민은정 인터브랜드 전무. (사진 제공=인터브랜드)



사람들이 많이 알고 기억하는 브랜드의 이름을 만들어왔다. 대표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

“대표작으로는 카누, T.O.P, 자연은, KB국민은행 리브, 신한은행 쏠, 오피러스, 로체, 알페온, 뮤지엄 산, 리엔, 코나, 그리고 평창동계올림픽 공식슬로건 ‘Passion. Connected. 하나된 열정’ 등이 있다. 브랜딩(Branding)이라는 개념이 뿌리내리기 전인 1994년부터 이 일을 해왔다. 남들보다 먼저 이 일을 시작한 덕에 좋은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브랜드 버벌리스트라는 직업이 아직은 조금 생소한 사람이 많다.

“‘이 브랜드는 저 브랜드와 다르다’라고 느끼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이름, 슬로건, 브랜드 스토리, 메시지, BI, 패키지 등의 요소들이 어우러져서 ‘우리 브랜드다움’이 완성된다. 브랜드 버벌리스트는 이 중에서 이름, 슬로건, 브랜드 스토리, 메시지, 언어적 컨텐츠 등의 요소를 총체적으로 개발하는 사람이다. 물론 이 언어적 요소가 개발되기 위해 필요한 브랜드 컨셉 및 아이덴티티 개발까지 포함한다.”


최근 ‘브랜드;짓다’라는 책도 펴냈다. 이름은 만드는 사람이다보니, 내 책의 이름은 그 어떤 때보다 고심해서 지었을 것 같다.

“언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정말 좋아한다. ‘존재는 언어로써 인식되고 규정된다. 존재는 언어가 지은 그 집을 벗어날 수 없다’라는 말이다. 나는 브랜드의 정체성 역시 ‘이름’을 통해 규정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원래는 ‘언어는 브랜드의 집’이라는 제목을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이것을 발전시켜 ‘언어로 브랜드의 집을 짓다’라는 의미의 ‘브랜드 짓다’로 최종 결정했다.”


카누, T.O.P, 오피러스, 뮤지엄 산 등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브랜들과 작업을 해왔다. 개인적으로어떤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나.

“후배들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가끔 받는데, 언제나 답은 같다.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가장 힘들고 어렵고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어렵고 힘들지 않은 프로젝트, 기억에 남지 않는 프로젝트들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꼽자면 럭셔리 리조트 ‘아난티’가 있다. 이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특별한 요청사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누가 보더라도 저게 무슨 뜻이지? 싶은 이름이어야 한다’는 요청이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발음과 더불어 이름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름을 개발해달라는 요청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아무도 의미를 유추할 수 없는 이름을 개발해달라는 까닭은 ‘여행’에 대한 기업의 철학 때문이다. ‘여행은 낯섦이다, 그래서 이름도 낯설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브랜드 이름을 짓는데도 법칙이나 참고하는 연구 등이 있다고 들었다.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브랜드 네이밍은 마케팅, 상표법, 언어학이라는 세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연구들이 다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의 브랜드 네임에게 꼭 필요한 덕목으로 ‘인스타그래머블’을 꼽고 싶다. SNS에 해시태그를 붙여서 올릴 만한 이름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이름이 되기 위해서는 고객들이 상상하고 참여할 만한 여지를 주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대전충남지역에서 판매되는 ‘이제우린’이라는 소주가 있다. 이 브랜드 이름은 ‘이제 우린? 그래서 뭐?’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 답을 고객들이 자유롭게 만들어낸다. ‘이제우린 1일, 이제우린 베프’ 이런 식으로. 나는 이런 이름들을 ‘열린 결말 이름’이라고 얘기한다. 고객들이 스스로 브랜드 스토리에 참여할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파워풀한 마케팅은 없다.”



△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슬로건 역시 민은정 전무의 손에서 탄생했다. (사진 제공=인터브랜드)



평창 올림픽 때는 'Passsion. Connected. 하나된 열정'이라는 슬로건 또한 만들었다.

“제안 PT 후 우리 회사가 선택되었을 때, 기쁘면서도 너무나 부담스럽고 걱정이 됐다. 역대 올림픽 슬로건들을 살펴보니 다 걸작이라, 부담이 배더라. 그래서 처음 개발했던 슬로건들은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회사의 해외 컨설턴트 중 한 명이 ‘평창’의 영어 표기가 너무 어렵다는 얘기를 하더라. P랑 C밖에는 안 보인다고. 그 얘기를 듣고는 그럼 P와 C를 강조해서 ‘평창’다운 슬로건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다음부터는 개발부터 최종 선택까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내가 만든 브랜드 네임을 잘 기억해주는 것이 가장 기쁠 것 같다. 

“이 일의 가장 큰 매력은 내가 한 일이 결과물이 되어 세상에 나온다는 거다. 내가 만든 이름이 시장에서 보여지고 사람들에게 불릴 때의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더군다나 비즈니스의 성과가 좋다면 그 기쁨은 더욱 크다. 카누가 그 예다. 카누는 출시부터 지금까지 압도적 1위 브랜드이고, 카누라는 이름은 인스턴트 원두커피의 기준이 됐다. 이 후 경쟁사들이 비슷한 제품들을 출시했는데, 카누라는 이름의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못했다. 뮤지엄산의 사례도 그렇다. 뮤지엄산의 원래 이름은 한솔뮤지엄이다. 안타깝게도 오크밸리 꼭대기에 있는 한솔뮤지엄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나도 처음 이 곳을 방문할 때 큰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위해 이 곳을 방문한 후 충격을 받을 만큼 감동을 받았다. 상상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곳이더라. 그래서 기업홍보관같은 이름 대신, 그 공간의 한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이름인 ‘뮤지엄산’으로 네이밍 했다. 지금 이 곳은 완전히 핫플레이스가 됐다.”


요즘 대학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마케팅에 관심이 많고, 브랜드의 성운을 결정짓는 카피라이터나 브랜드 버벌리스트 같은 직업을 희망한다.

“마케팅은 세상에 대한 관심, 사람들에 대한 애정, 내일에 대한 호기심이 바탕이 된다. 즉 세상 모든 것에 관심과 호기심이 많은 사람에게 적합한 일이다. 지금 시대의 카피라이터나 브랜드 버벌리스트는 글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정선된 글을 잘 쓰는 것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서로 다르다. 뻔한 답변일 수 있지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남다른 경험에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을 훈련하고 감각을 열기 위해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나.

“나는 어떤 가수의 지독한 팬이다. 25년째 팬클럽 활동을 하고 있다. 그 가수분이 저를 보면 또 오셨냐고 인사할 정도다. 그리고 여행도 좋아한다. 지금 하나의 테마 하에 111개의 장소를 리스트업하고 한곳한곳 도전중이다. 지금까지 60여 곳을 방문했다. 언젠가 그 테마로 책도 한권 내는 게 꿈이다. 도서관, 미술관, 동물원도 정말 좋아한다. 아직도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하나의 제품이 혹은 브랜드가 좋은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두유가 ‘콩즙’이라 불렸다면 지금 같은 두유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히트텍이 ‘유니클로 내복’이라고 불렸다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을까. ‘두유’라는 이름이 붙었기에 우유의 라이벌이 될 수 있었고, ‘히트텍’이라는 이름이 붙었기에 의생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좋은 이름은 브랜드의 성공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하이데거의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인용하고 싶다. 우리가 어떤 존재에 대해 갖게 되는 인식은 ‘이름’이 만들어낸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다.”



△ 인스턴트 원두커피의 기준이 된 동서식품의 '카누' (사진제공 = 동서식품)



브랜드 버벌리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나 재능은 무엇인가.

“‘낯설게 보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에 매우 공감한다. 그런데 세상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원한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이도록 하는 것’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부터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힘을 길러야 한다.”


브랜드 버벌리스트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를 하자면.

“세상 모든 직업이 그러하겠지만, 1%의 행복을 위해 99%의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것이 이 일인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수한 공격과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이 일에 도전했다가 상처만 받고 중도 포기하는 친구들도 많다. 그래도 나는 이 일을 정말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도전해 볼만한 매력적인 일이라고 자신한다. 단단한 각오가 되어 있다면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moonbl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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