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물

[여행가] 손미나, 삶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조회수 : 1432

“저도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조명이 꺼지고 무대에 어둠이 내려앉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종이와 펜을 들고 그녀 주위로 모여들었다. 작가 손미나를 처음 만난 자리는 인터뷰 하루 전날, 녹화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방송국에서였다.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달라는 스태프들의 요청에도 멈추지 않는 사인 공세. 그 안에 그가 있었다.

상기된 얼굴로 인사를 건넨 젊은이들은 그에게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는데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단연 ‘꿈’이었다. “사실 제 꿈이 아나운서인데요.” “저도 글을 쓰며 사는 게 꿈이에요.” “저도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등등. 인기 절정의 아나운서에서 여행작가로, 또 소설가로…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두루 거쳐온 사람. 누군가의 ‘꿈’을 닮아 있는 사람.

그 역시 가슴앓이하며 꿈을 그리던 시절이 있었을까. 문득 그 시절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저서
스페인 너는 자유다(2006)
태양의 여행자(2008)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2009)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2011) 등

“대학생들이 부러워요.” 이튿날 다시 만난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의외였다.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책을 쓰는 그녀, 프랑스 파리에서 매일 아침 센 강변을 걷는 그녀, 작가 ‘알랭 드 보통’과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인터뷰한 그녀, 모두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그녀가 아니던가.

“아직 완성이 안 된 사람들이잖아요.” 그의 표현에 따르면 20대 시절은 아직 무엇을 만들지 모르고 조물조물하고 있는 찰흙과도 같은 시기란다. 무엇이든 원하는 모양대로 삶을 빚어낼 수 있는 시기, 조금의 노력만으로도 큰 가능성이 열리는 시기. 그는 “미완성이 주는 행복이 있다”고 했다.

20대, 그의 인생이 막 빚어지기 시작하던 대학 시절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가 강조했던 ‘미완성이 주는 행복’을 온전히 누렸을까. “저도 많이 불안했죠. 오죽했으면 대학에 가서 ‘속았다’고 생각했겠어요. ‘10대가 질풍노도의 시기라더니 20대가 더 심하다’면서요.”

인생에서 처음 자유로운 선택과 시간이 허용되는 대학 시절. 하지만 초·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만 살아왔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이 자유를 낯설게 받아들인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수많은 선택 앞에서 길 잃은 강아지처럼 방황하거나,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방탕해지기 일쑤다.

그 역시 멋모르고 자유를 만끽했던 새내기 시절이 있었다. “하루는 신입생 환영회를 마치고 새벽이 다 되어서 집에 들어갔어요. 갓 스무 살이 된 제 입장에선 엄청난 반란이었죠. 그런데 부모님께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거예요.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일주일쯤 뒤 학교로 부모님의 편지가 날아오더라고요.”

편지엔 이제 막 성인이 된 딸에게 들려주는 부모님의 진심 어린 조언이 적혀 있었다. ‘스스로 정한 기준이 있어야 진짜 자유를 얻을 수 있단다. 기준 없이 얻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부모님은 그에게 스스로 통금시간을 정하되 그것을 이야기하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밤 10시가 아니라 새벽 2시가 되어도 좋지만 스스로 기준을 정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은 오랫동안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자유는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쓰일 때 가치가 있다. 대학생 손미나는 호주로 교환학생을 떠났을 때 진정한 자유를 만났다. “낯선 땅에 홀로 떨어지니 부모님 품에서 살 때 미처 몰랐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인간 손미나’가 보이기 시작한 거죠.”

“내 삶은 항상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삶이었고,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나 자신을 찾는 일이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진짜 여행이 시작된 건 바로 그 시기부터였다. 1년간의 호주 생활이 마무리될 무렵 이번엔 스페인 어학연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여학생이 해외 유학을 가는 것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이 남아 있던 시기.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스페인으로 가는 티켓부터 구했다.

스스로 목적지를 정해버리는 ‘당돌한’ 선택엔 예상치 못한 위기도 뒤따랐다. “어쩐지 가격이 싸다 했는데 알고 보니 도시마다 다 서는 비행기였어요. 호주 멜버른에서 시드니로, 시드니에서 태국으로, 태국에서 인도로, 또 독일로, 스페인으로…. 기내식을 아홉 번이나 먹고 목적지에 도착했다니까요.”

그렇게 도착한 열정의 땅 스페인에서 또 다른 자신을 만났다. “해외 생활에서 느낀 건 내가 생각보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또 누구보다 소통을 즐거워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점이었어요. 이 부분을 살려 직업을 선택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됐죠.” 스스로의 열정이 어느 곳을 향해 있는지 알게 된 그가 찾은 첫 번째 꿈은 ‘아나운서’였다.

행복이 있는 곳에 나의 길을 내다

방송사 최종 면접 현장. 이력서 특기란에 스페인어를 적은 그에게 “세계시장에서 KBS가 나아갈 방향을 스페인어로 말해보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대답이 끝나자 한 면접관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그저 그런데…”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주어진 질문. ‘돈키호테’에 대해 말해보시오. 차분히 대답을 마친 그는 미소 띤 얼굴로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스페인어를 아시는 분께서 ‘돈키호테’에 대해 물어보신 점은 좀 의외입니다.” 위기상황에서도 당돌하게 답하는 대범함. 진행자가 갖춰야 할 임기응변을 보고자 했던 면접관들을 만족시킨 이유였다.

KBS 공채 아나운서가 된 그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핑클’이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주부들의 에너지가 모여드는 ‘가족오락관’의 최장수 여자 MC로, 고등학생들의 꿈이 이뤄지는 ‘도전골든벨’의 안방마님으로 이름을 알렸다. 아나운서로서 최고 영예로운 자리로 여겨지는 ‘9시 뉴스’ 앵커석에도 앉았다.

그렇게 쉼 없이 달리기를 수년,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숨이 차오르는 순간이 왔다. “오랫동안 달리다 보면 멈춰서도 헛발질이 계속되잖아요. 방송도 마찬가지였어요. 라디오를 통해 청취자를 위로하면서도 진심을 담지 못했죠. 정작 위로가 필요한 건 나 자신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휴직을 하고 떠났던 여행에서 그는 행복한 삶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게 됐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가 찾은 대답은 두 번째 꿈, ‘여행 작가’로서의 삶이었다.

“세상을 모르는구나.” “철이 없어서 어쩌려고 그래.” 아나운서에서 여행 작가로 전업을 선언했을 때 주변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만일 사회 이념에 따라 사는 게 맞다면 ‘9시 뉴스’를 진행했을 때가 가장 행복해야 했겠죠. 하지만 전 그렇지 않았거든요. 9시 뉴스 진행할 때도 물론 배우는 점이 많았지만 내 옷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애쓰는 사람, 그 자리에 주저앉는 사람, 그리고 내가 무엇과 맞서 싸우고 있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 분류하자면 저는 첫 번째 사람인 셈이에요.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도전하지 못한다면 결국 후회했겠죠.”

그는 10년 동안 몸담은 방송국을 떠나 여행 작가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마지막 순간 성패를 결정짓는 건 ‘자신감’

“사람들이 ‘아나운서가 좋아요, 여행 작가가 좋아요?’ 하고 많이 물어보세요. 여행 작가로 사는 게 자유로워 보인다고 다들 부러워하는데 사실 프리랜서는 절대 ‘프리’하지 않죠. 원하는 삶을 사는 만큼 자신을 더 통제해야 합니다.”

여행기 3권, 번역서 2권, 소설책 1권을 발표한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올리며 또 다른 성공 가도를 걷고 있다. 매번 스스로를 도마 위에 올려야 하는 프리랜서 생활이지만 글을 쓰는 것이 즐겁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흘러가 버리지만 글은 영원히 남아요. 과거로 가는 말에 비해 글은 미래로 가져갈 수 있다는 느낌이 들죠. 또 말은 세상을 향해 있다면 글은 나 자신을 향해 있다는 느낌이에요.”

새로 구상하고 있는 에세이집에는 20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라고.

“유럽에서 만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유행을 타는 옷은 일부러 사지 않아요. 그 정도로 남과 같아지는 것을 경계하거든요. 그런데 한국 젊은이들은 오히려 남과 달라지는 것을 두려워해요. 남들이 영어 공부하면 나도 해야 하고, 남들이 여행 가면 나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남이 아닌 자기가 원하는 것, 남들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자기가 생각했을 때 의미 있는 것, 사실은 그게 행복의 원천인데 말이에요.”

천편일률적인 삶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이들이 자신만의 무기를 갖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 자신감이 없는 것이 아쉬워요. 모든 일은 80%가 자신감에서 비롯하거든요. 예를 들어볼까요. 다이빙 선수들은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투자해 연습을 하지만 누군가는 결국 실수를 하죠. 그 이유를 들어보니 뛰어내리는 그 마지막 순간, 자기자신을 의심하면 실수한다고 하더라고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성패가 갈리기 마련이에요.”

새로운 세계로 도약할 때마다 당당하게 착지한 그의 성공 비결도 변치 않는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 그가 남긴 메시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젊음은 그 자체로 무한한 가능성이거든요. 불안과 좌절을 에너지 삼아 달려나가길 응원하겠습니다.”



손미나가 말하는 인생의 멘토

아나운서 이계진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학교 동문인 이계진 아나운서의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알아냈어요. 아나운서 시험은 경쟁률이 높을뿐더러 여러 가지 루머도 많았거든요. 세간에서 들려오는 얘기를 믿기보다 일단 한번 부딪쳐보기로 했죠. 전화를 해서 도움 말씀을 듣고 싶다고 했는데 처음엔 정중하게 거절하셨어요. 하지만 끝까지 설득해야 한다는 마음에 한참을 부탁했고 결국 어떻게 이렇게 당돌하고 끈질긴 아이가 있는지 얼굴 한 번 보자며 찾아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이계진 아나운서를 뵙던 날 값진 조언을 듣고 헤어지는데 절 보니 눈빛에서 느껴지는 게 있다며 ‘되겠네’라고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그 한마디가 저에겐 큰 힘이었고 아나운서 시험도 그때의 자신감으로 합격한 것 같아요.”



여행작가 마르틴 카파로스

“아르헨티나에서 기자로 30년간 일하다가 여행작가로 전향한 분이에요. 아르헨티나 전역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스페인어권 국가에선 굉장한 스타 작가가 됐죠. 아나운서 휴직을 결심하고 스페인에서 공부할 때 제가 다니던 대학에 와서 특강을 한 것을 계기로 만나게 됐어요. 그 당시엔 ‘나도 마르틴 카파로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나운서 신분이었기 때문에 제 꿈이 이뤄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다이어리에 ‘한국의 마르틴 카파로스를 꿈꾼다’고 적어두곤 했는데 지나고 보니 제가 바로 마르틴 카파로스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네요.”


글 김보람 기자 bramvo@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메이크업&헤어 홍영희 이사(컬처앤네이처)┃장소협조 카페베네 로데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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