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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강사] 한 가지만 잘하자! “Do what you love, the rest will come” 조회수 : 1720

김대균 하면 토익, 토익 하면 김대균.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토익 최다 응시 만점 강사로 유명하니 토익의 신이라 해야 할까. 한국에서 토익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게 15년 전쯤. 김대균 강사도 비슷한 시기에 학원에서 토익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기업에서 신입사원부터 부장에 이르기까지 김대균 토익을 한 번쯤은 거쳐봤다는 얘기다.

강사로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아직도 그는 강의 양을 줄이지 않고 있다. 반나절 강의, 방송 출연, 토익 책 발행 등 무한 체력을 요구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캠퍼스 잡앤조이가 선정한 2011 히트상품 토익 강사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토익의 신을 만나면 영어 잘하는 비책을 들을 수 있을까’ 기대감을 안고 그를 찾아갔다.

새벽 6시 55분 첫 수업부터 오후 2시 반까지 이어지는 강의. 잠깐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저녁 강의를 시작한다. 주말에는 주로 특강이 잡혀 있다. 틈틈이 동영상 강의 촬영, 방송 출연을 하고, 짬을 내 토익 책도 쓴다. 지난 2월 중순 인터뷰 당시 김대균 강사의 스케줄이다. 모든 강의는 서서 하고 쉼 없이 말을 해야 한다. “예전에는 하루에 4시간 30분씩 잤어요. 어느 날은 이렇게 강의하다 죽지 않을까 고민도 했죠. 1996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강의를 해온 것 자체가 기적이에요.(웃음)”

그가 처음 토익을 가르친 때만 해도 토익은 영어 강의의 미개척 분야였다고 한다. 그렇게 처음 한 명의 학생과 시작한 강의는 불과 6개월 후 인기 강의로 자리매김했다. 인터넷 수강신청이 도입되기 전에는 수강증을 끊기 위해 밤새우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전성기 때 그의 연봉은 20억 원에 달했다.

누가 봐도 성공한 토익 강사. 그동안 번 돈으로 다른 사업을 시작할 법도 한데 여전히 매일 새벽 5시, 수업 준비를 시작한다. 그를 그토록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는 어떤 꿈을 꾸었던 것일까.



영어는 친구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였어요. 일찍이 TV가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극장처럼 TV 보러 오곤 했죠. 사립 초등학교에 다녔고 집 마당에서 야구를 할 수 있었어요. 하고 싶은 건 다 해봤던 것 같아요.”

딱 초등학교 때까지의 기억이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뒤로는 반대의 극한 체험을 했다. 잦은 이사는 기본, 고등학교 등록금을 제때 못내 수모 아닌 수모도 당했다.

“참고서 살 돈도 없었어요. 유일한 낙은 산울림 노래를 들으면서 따라 부르는 것 정도였어요. 의지할 곳이 없어서 노래를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또 하나 의지했던 게 바로 영어다. 중3 시절, 선생님의 영향으로 영어에 재미를 붙인 게 계기였다. 중고 영영사전을 보면서도 지루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영어 구문으로 기본기를 다지던 때였는데, 성문종합영어를 몇 번 봤느냐를 놓고 서로 대결을 했죠. 어학의 왕도는 반복이라는 걸 그때 깨우쳤어요.”

마음속에 ‘영문학 교수’라는 꿈이 생겼다. 대학도 영문과로 진학했다. 그런데 장학금까지 받고 들어간 대학에서 영어 때문에 무시를 당했다. 타임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다.

“영어를 꽤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영문과면서 영문도 모르고 들어왔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영문과가 아닌데 영어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어요. 오히려 정치, 경제 등 내가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죠.”

고등학교 시절 영어 공부가 ‘반복’이었다면 대학 시절엔 ‘기본’으로 돌아가는 훈련을 했다. 단어를 다시 처음부터 공부했다.

“선배들이 a와 the를 빼고 모든 단어는 찾아보라고 했는데 중요한 교육이었어요. 영어 단어는 뜻이 여러 개인데, 특히 타임지는 익숙한 단어도 새로운 뜻으로 많이 나왔어요. ‘where is the beef?’는 ‘핵심이 뭐야?’라는 뜻도 돼요. 앞뒤 문맥을 파악해서 해석하는 법을 배웠죠.”

하루 수천 명의 학생을 만나고, 소위 ‘말로 밥 벌어 먹는 직업’을 갖고 있는 김 강사인데, 이 무렵만 해도 무대 공포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발표하다 틀리면 ‘공부도 안 해놓고 다른 사람 시간 낭비하게 한다’며 당장 내려오게 했어요. 그걸 견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발표하면서 점차 겁이 없어졌고, 나중에 방송 출연할 때도 유연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죠.”

영어는 탈출구

동아리 회장을 할 만큼 학교생활을 적극적으로 했고 학점 관리도 잘했다. 큰 꿈과 포부도 있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형편은 마음 한쪽을 늘 무겁게 만들었다.

“자신감은 있었지만 집은 셋방에 살았고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죠. 어학연수를 가는 친구들을 보며 답답한 마음에 비슷한 효과라도 내야겠다고 생각해서 외화를 많이 봤어요. 영국문화원에 가면 비디오와 책을 볼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생각했어요.”

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먹고살 걱정은 떠나지 않았다. 등록금이 문제였다.

“입학 장학금은 받았지만 계속 받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어요.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과외를 몇 개씩 하면서 매번 등록금을 마련했어요.”

학과 공부, 동아리 활동, 과외 세 가지를 중심으로 대학 생활을 했다. 연애도 했지만 여자친구 부모님의 반대로 이별했다.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시간이 없었지만 피한 적도 여러 번이다. “겉으론 당당했지만 속으론 늘 위축돼 있었다”고 한다.

믿을 것은 오로지 영어였다. 3개 국어 이상을 구사하겠다는 꿈도 있었다. 힘들었지만 목표가 붙들어줬다.

“꿈은 항상 컸어요. 큰 꿈을 꿔야 근처라도 도달한다는 생각이었죠.”

대학원에 진학한 후 유학 자금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찾은 학원이었다. 그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강사가 적성에 잘 맞았어요. 무엇보다 수입이 좋았죠. 통장을 보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동그라미 하나가 더 붙어 있더라고요.”

일이 계속 많아지면서 강사로서 최고가 되자는 꿈을 갖게 됐다. 그는 대중적인 강의를 하고 싶었다. 당시 토익 강의가 많지 않은 상황이었고, 남들이 많이 하지 않는 분야에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으로 토익 시험을 치르기 시작했다. 계속 시험을 보다 보니 만점이 나왔고, 문제 유형이 보였다. 운이 좋았던 건지 1997년 말부터 토익이 꽃을 피우면서 강의가 입소문을 탔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강사로 산다는 것

처음 강사를 시작한 건 유학을 가기 위해서였다. 자금을 마련한 후에는 유학을 떠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혹은 취업 생각은 없었을까.

“한 번도 대기업 원서를 써본 적이 없어요. 친구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죠. 지금은 강사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강사는 학점이 안 좋거나 학생 운동을 해서 대기업에서 안 뽑아줬을 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주변 반응은 좋지 않았지만 김 강사에겐 확신이 있었다.

“군 생활을 해보니 조직 생활을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더라고요.(웃음) 자율성이 보장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 일하는 만큼 보상이 따라오는 것을 생각하면 나에겐 이 직업이 최선이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의 선택은 적중했다. ‘김대균 토익’이 하나의 명사처럼 쓰이는 결과를 낳았으니 말이다. 물론 강사로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명성이 높아지니 깎아내리려는 무리도 생겼다. 늘 변화하는 트렌드를 좇는 것도 과제였다.

“요즘은 토익을 최대한 빨리 끝내려는 학생들이 많아요. 특강이나 자료도 더 많이 지원해야 하죠. 또 강의뿐 아니라 학생들과 교류하며 그들을 공감하는 노력도 필요해요.”

김 강사에게 정규직이라는 개념은 없다고 한다. 아무리 잘나가는 강사라도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에 한 번씩 재계약을 한다. 그렇게 15년 넘게 살아남았다.

“그래서 모든 계획은 3개월, 6개월 단위로 짜요. 한번은 보험설계사가 평생 계획을 짜준다고 했는데, 머리에 잘 안 들어오더라고요.(웃음)”

김 강사는 여전히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좋아하는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옆길로 새지 않고 한길을 걸은 것 등에 감사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늘 20대 청년들을 만나고 대하는 만큼, 항상 젊은 마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지 말고 단어부터 외워라

“요즘 학생들은 표정이 어두워요.”

확실히 이전 세대에 비해 수강생들의 분위기가 침체돼 있다고 한다.

“수업 들을 때 초롱초롱한 눈빛이 많이 사라졌어요. 아무래도 경기가 어렵고 취업난이 지속되다 보니 위축돼 가는 것 같아요.”

김 강사 자신이 20대에 위축된 모습으로 살았기에 좋은 강의를 하는 것과 더불어 ‘꿈을 격려하는 것’도 공들여 하고 있다. “꿈을 크게 가지라”는 말과 “자신감 있게 열심히 살라”는 말을 주로 한다. 또한 슬럼프가 있을 때에는 단어를 외우라고 말한다.

“불안해요? 그럼 누워서 생각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단어를 외우세요. 그게 일이 풀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요.”

“Do what you love, the rest will naturally come.”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강조한다. 한 가지만 잘해도 즐겁게 하다 보면 성공은 따라온다는 말이다. 김 강사에게는 그것이 영어였다. 그는 과연 꿈을 이뤘을까.

“어느 정도는 이룬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남아 있죠.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영어 놀이터, 영어 학원, 시청각 공간 등이 한 건물에 갖춰진 영어문화센터를 만드는 구상을 갖고 있다. 그때까지는 강의, 방송 출연, 동영상 촬영 등으로 이어지는 스케줄을 지속할 생각이라고 한다.

“대학 시절 잘나가는 친구들을 볼 때 비교가 됐어요. 처음부터 좋은 머리, 좋은 집안 등의 여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그런 사람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죠.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면 하나씩 일궈나가는 기쁨이 있어요. 거기서 얻는 삶에 감사하는 마음, 작은 일에 즐거워하고 인생을 풍요롭게 바라보는 시각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값진 겁니다. 지금 어려운 순간이라 생각되더라도 힘내고 파이팅하세요.”



영어 잘하는 비결, 그것이 알고 싶다.

Q 토익 언제부터 해야 할까?

A
토익 점수의 유효기간이 2년이라서 대학 새내기 때는 잘 공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4학년 때 시험을 보더라도 우선 자신의 점수대 정도는 파악해두는 게 좋다. 1학년 때 시험을 한 번 보고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놓으면 영어 공부 전략을 짜는 것이 용이할 것이다.



Q 최근 토익의 특징과 점수 잘 받는 비결은?

A
2003년 이후로 토익의 유형은 같지만 문제가 계속 바뀌고 있다. 기본 유형 학습만 잘하면 700점 이상의 점수를 받을 수 있을 테지만 고득점을 위해서는 응용문제를 풀어야 한다. LC는 기출문제만 잘 보면 된다. RC는 50% 정도는 응용문제가 출제되고 어휘가 어려워졌다. 특히 파트 7 독해 지문이 많이 길어졌다. 시간을 안배해서 풀어야 하고, 평소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한다. 하루 한 세트씩 푸는 것도 방법이다. 정리하면 우선 유형별 학습을 하고, 기출문제를 푼 후 새로운 문제를 접하는 순서로 공부하자.



Q 추천하는 영어 공부 방법은?

A
매일 한 문장이라도 외울 것. 교통방송이나 EBS 등에 영어 방송이 있다. 가볍게 보면서 한 문장 정도 외우는 습관을 기르면 좋다. 문장이 모이면 실력이 된다. 매일 하지 않으면 실력도 늘지 않지만 재미도 붙이기 힘들다. 무엇보다 목표 의식을 명확히 가져야 한다. 토익 시험을 보는 사람은 토익 문제를 풀어야 하고, 회화를 하고 싶으면 말을 많이 해야 한다.



Q 영어와 친해지는 비결은?

A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은 미국 드라마를 보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팝송을 들어라. 우선 흥미를 붙이는 게 중요하다. 처음부터 어려운 책을 보지 말고 쉬운 책부터 접근하라. 주변에 아는 중·고등학생이 있으면 과외비를 덜 받고서라도 한번 가르쳐볼 것을 추천한다. 같이 공부하다 보면 가르침을 받는 학생은 성적이 안 올라도 가르치는 이는 실력이 는다.



글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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