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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수 예술성, 세계에 알려야죠″···명문대생에서 전통자수공예가로 변신한 운경 이경희 조회수 : 2279



△전통자수공예가 ‘운경 이경희씨


[ PROFILE ]

이경희(40) 

운경(雲耕) ‘구름밭을 갈다’

학력 고려대학교 생명공학원 이학석사 졸업 (2002)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박사과정 수학 (2006)

숙명여자대학교 정영양자수박물관 전통자수 과정 수료 (2016)


[캠퍼스 잡앤조이=홍효진 인턴기자] “너 미쳤니?” 어머니가 되물었다. 본인의 입을 통해 나온 그 ‘미친 소리’의 근원을 곱씹던 경희씨가 결연하게 대꾸했다. ‘이 일을 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엄마, 아빠 전통자수 해보고 싶어요”

국내 명문 약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딸의 한마디는 온 집안을 뒤집어 놨다. 미래가 보장된 약사의 길을 걷고 있던 그가 돌연 ‘학업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국내 명문대를 장학금까지 받고 다니던 딸의 첫 반란이었다. 어머니는 우울증에 1년여를 앓아누울 정도였지만 그의 단호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처음엔 취미로 배워볼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배워보니 너무 재밌었던거죠(웃음). 부모님께서는 ‘바느질해서 뭐 먹고 살래?’라는 말만 반복하셨지만 포기할 수 없더라고요. 지금은 파트너 역할까지 해주실 정도로 제 길을 응원해주세요. 주변에 딸 자랑을 너무 하셔서 제가 다 민망할 정도로요.(웃음)”


이경희씨가 전통 자수를 처음 접한 건 중학교 가정시간이었다. 손재주도 남달랐던 그는 한 때 의류학과 진학도 꿈꿨지만 집안의 반대로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게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 약학대학 박사 과정을 밟던 이 씨는 자신이 생각했던 대학원 생활이 현실과는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배우는 것 자체를 좋아했어요. 공부에 재미를 붙여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재능을 보이게 됐고요. 그런데 계속 무언가를 연구하고 또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더라고요. 대학원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어요. 이런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가 어디 없을까를 고민하게 됐죠. 공부 말고 제가 잘 할 수 있고 흥미있는 걸 생각해보니 ‘전통 자수’였어요. 중학교 때 경험이 크게 작용했죠(웃음).”


전통자수의 상업화…ICT 접목해 스피커 제작

2012년, 전통자수를 홀로 연구하던 이 씨는 한계를 느껴 전통자수공예 명장 김태자 선생(형문화재 80호)을 찾아갔다숙명여대 정영양자수박물관 주임교수인 김태자 선생은 2001년 유네스코 아태지역에서 한국 최초로 자수공예 1위를 차지하며 전통 문화를 알리는 데 이바지 한 인물이다. 이 씨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김태자 선생의 전통자수 강의를 들으면서 전통자수의 매력에 더욱 빠져든 계기가 됐다. 


“처음 선생님을 찾아갔을 땐 몇 달 하다 그만 둘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전통 자수의 명맥을 이어가는 분조차도 저한테 ‘젊은 친구가 이 힘든 걸 왜 하려고 하냐’면서 의아해 하셨죠. 지금은 전시회도 열고 교육도 하면서 제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모습을 기특해 하시죠. 여전히 제게는 가장 큰 스승님이세요.”


전통자수를 배우던 이 씨는 수료를 1년 앞둔 2015년, 전통자수가와 전통자수공예가의 갈림길에 섰다. 이 씨는 전통자수를 시작할 당시 무형문화재를 꿈꿨던 터라 망설임 없이 자수가의 길을 택할 것이라 여겼지만 한국 자수의 세계화를 위해 처음 세웠던 목표를 수정했다. 



△운경 감성등 ‘오가나이저 화이트’(사진=이경희씨 제공)



“가만히 앉아 자수만 놓는다고 전통자수가 널리 알려지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전통자수공예가가 되기로 결심했죠. 마침 정부에서 진행하는 청년 CEO 프로젝트 지원으로 2015년 10월 개인 공방을 차리게 됐어요. 2017년 2월에는 충남도 프로젝트를 통해 제품을 만들었어요. 전통공예와 ICT를 접목해 상품화해보자는 취지였죠. 그 때 제작한 ‘블루투스 스피커’가 일본 쇼핑몰 ‘WbuyBuy에 입점되기도 했죠.” 


외국에서 더 ‘핫한 한국 전통자수

2016년 1월, ‘새해맞이 복주머니 만들기’가 청와대 사랑채에서 진행됐다. 하루 50명씩 선착순으로 외국인이 몰려들었고, 총 1000여명의 외국인이 운경을 찾아왔다. 그 해 추석시즌에도 체험 행사가 열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행사를 여니까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캐나다에서 오신 한 분은 복주머니가 너무 맘에 든다, 캐나다에 오게 되면 연락해 달라면서 연락처를 주기도 했어요. 중동에서 온 신혼부부도 있었는데, 행사 이후에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면서 촬영해가기도 했죠.”


올 1월 스웨덴 스톡홀름 WBL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역시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일반인은 물론 현지 공예가들도 그의 개인전을 관람했다. ‘전통’ 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 때문인지 현지 공예가들은 예상밖의 젊은 공예가 이 씨를 보고 놀라기도 했다. 



△1월 4일~12일까지 진행된 운경 스웨덴 개인전(사진=이경희씨 제공)



“다른 박물관 관계자나 현지 공예협회장, 조각가들이 많이 왔어요. ‘한국 자수 정말 아름답고 멋있다대단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가슴이 벅찼죠. 처음에는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한국의 전통자수가 외국인들에게는 낯선 존재일 테니까요. 좋은 기회가 왔음에 감사하면서 전시를 준비했는데, 첫날부터 많은 분들이 오셔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우리 것 세계화하는 교량

운경이 그리는 꿈에 대해 묻자 그는 전통자수를 널리 보급시키는 중간자 역할이라고 답했다. 아직 낯설기만 한 전통자수의 상업화로 세계화의 교량을 열어가겠다는 포부다.





제가 가는 길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도 많아요. 전통자수를 할 거면 전통자수가로만 있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저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수가든 공예가든 최종적인 목표는 전통자수를 널리 알리자는 거니까요. 전 오히려 상업화하지 않으면 활성화될 수가 없고 언젠가는 명맥이 끊길 거라고 봐요. 이경희가 가는 길은 다르지만 그 의미는 같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이경희 씨는 전통자수를 하는 자신에 대한 편견어린 시각이 속상하다고 답했다. 동시에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으로 ‘응원하겠다’는 한 마디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돈도 안되는 걸 왜 하냐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전 돈 때문에 시작한 게 아니라 단지 너무 좋아서 하고 있는 거예요. 편견이 담긴 시선에 힘들 때도 있지만 저를 알아주는 사람들 때문에 힘이 솟는 것 같아요(웃음). 젊은 사람이 전통 자수를 지켜가려고 하는 마음이 예쁘고 자랑스럽다는 반응을 볼 때면 정말 행복하죠. ‘응원할게요’란 한 마디가 이걸 꾸준히 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돼요. 전통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와 책임감에 맞는 공예가가 되고 싶어요.


hyojin@hankyung.com

사진=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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