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물

방송작가가 말하는 ‘진짜 방송작가’…“대본 고치기 싫어 도망가기도 하죠” 조회수 : 2802

[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직업으로 ‘방송작가’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치열하게 글을 쓰는 모습보다 연애하는 장면이 더 많아서인지, 막연한 환상을 갖고 ‘방송작가’를 꿈꾸는 이들도 많아지는 추세. ‘드라마 속 작가’말고, 진짜 ‘드라마를 만드는 작가’는 어떤 모습일까. 치열하지만 그래서 더 즐겁다는 ‘방송작가’에 대해 알아봤다. 



△ 임선경 방송작가 (사진=이승재 기자)


임선경 작가는 20년 이상의 경력을 자랑하는 방송작가다. 1995년 KBS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로 데뷔 후 MBC 청소년드라마 ‘나’,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KBS 다큐 ‘이것이 인생이다’ 등의 작가로 활동했다. 그 외 다양한 애니메이션, 특집 드라마 등을 진행했고 최근에는 방송작가에 대해 소개하는 <나의 직업 방송 작가>를 출간했다.      


- 어떤 계기로 방송작가를 시작하게 됐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해, 방송국에 진출한 선배나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 중에 한 명이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었는데 ‘우리 팀에서 작가를 구하는데, 원고 한 번 내보라’며 제안을 해 시작하게 됐다. 시나리오 작가를 준비하던 중이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원고를 보냈는데, 사실 처음에 쓴 것은 친구 손에서 바로 버려졌다. 드라마의 문법에 전혀 맞지 않는 원고였기 때문이다.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시 원고를 작성했고, 운 좋게 막내작가 생활 없이 바로 입봉했다."  


- 작가들 사이에서의 ‘입봉’은 무엇을 말하나 

"보통 막내작가는 원고를 쓰지 않는다. 자료 정리, 아이템 찾기, 손님 접대, 도시락 준비, 프리뷰 등 글 쓰는 일 외의 모든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다가 글을 쓸 수 있는 서브 작가가 되면 ‘입봉’했다고 표현한다. 작가에게 입봉은 본인이 쓴 글이 방송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것을 말한다. 배우의 대사로 나오든, 성우가 읽는 멘트든 방송에 나오면 된다." 


- 방송작가는 메인작가, 서브작가, 막내작가(보조작가)로 나뉘나 

"그렇다. 일반적으로는 한 명의 메인작가 밑에 여러 명의 서브작가가 있다. 종합구성물은 메인작가가 여러 명 있을 수도 있지만, 메인 중의 메인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침교양프로그램의 경우 메인작가가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구성을 맡는다. 오프닝을 하고 MC가 인사한 뒤, 초대손님을 부르고, 촬영한 VCR를 트는 등의 전체적인 틀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는 각각의 꼭지를 서브작가가 담당한다. 누구는 인터뷰 꼭지를 맡고, 누구는 스튜디오 멘트를 맡는 식이다. 때문에 방송작가를 구성작가라고도 부른다." 


- 드라마, 교양/시사,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분야는 무엇인가

"가장 스트레스가 많으면서도 재미있는 것이 드라마다. 드라마는 굉장히 위험부담이 큰 장르다. 잘 되면 다 같이 잘되고, 안 되면 배우부터 스텝까지 같이 망한다.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압박이 많아 힘들다. 반면 함께하는 작업이라 생각지 못한 시너지가 날 때도 있다. 작가가 쓴 대본은 50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연출을 잘 해서 80이상을 만들어 내고, 배우가 연기를 잘해 100 이상의 장면을 만들기도 한다. 특히 드라마는 화제성도 크기 때문에 글 쓰는 사람으로서는 극강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드라마 방영 후 다음 날 사람들이 나의 드라마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 기분이 정말 좋다." 



△ 드라마 '사랑의 온도'의 한 장면. 작가와 감독이 의견 차이로 다투고 있다. (사진=드라마 '사랑의 온도' 캡처)



- 인기 있는 드라마의 경우 시청자 의견 때문에 결말이 바뀌기도 한다던데, 가능한 일인가 

"시청자 의견이 드라마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결말이 바뀌는 것은 조금 과장이겠지만 배우의 분량이 달라지는 일은 많다. 조연 배우가 갑자기 큰 인기를 얻고 시청자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면, 화제성을 위해서라도 해당 배우 분량을 늘리게 된다." 


- 요즘 드라마에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자주 등장한다. 현실감 있다고 느낀 장면이 있나 

"드라마에 나이 많은 작가를 마녀처럼 묘사하던데, 실제로도 그렇다(웃음). 드라마 쓰는 동안에는 지인들의 생일이나 결혼, 돌잔치도 못가고 세수조차 못할 때가 많다. ‘미리미리 써두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찍 시작해도 막판까지 몰리게 된다. 2년 동안 준비를 해 완벽하단 생각이 들어도, 일단 방송이 시작되면 수정 작업의 연속이다." 


- 작가들이 한 집에 모여 합숙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게 작업을 한다. 제작사에서 구해주는 경우가 많고, 가끔 개인 작업실을 사용하기도 한다. 집필 중일 때는 보조작가와 지속적인 회의가 필요하다. 갑자기 어휘가 떠오르지 않거나, A대사가 나은지 B대사가 나은지 의견을 묻을 때도 항상 보조작가가 옆에 있어야한다." 


- 드라마 시작 전에 인물 관계도를 그려 회의하는 장면도 나오더라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낀 장면이다. 보통 드라마 시작 전에 화이트보드에 인물 관계도를 그리고 회의를 한다. 분량 배분 등을 체크 하고, 관계도도 수정한다. 자극적인 요소를 넣어 시청률을 올리자는 의견도 분분하다. 드라마는 시청률만 잘 나오면 현장 분위기가 매우 좋다. ‘작가 훌륭하다’는 칭찬도 자자하다. 하지만 시청률이 안 나오면 압박이 심하다. 방송국 윗분부터 PD, 지인들까지 ‘이렇게 수정해보자’며 의견을 전달한다. 입 가진 사람은 죄다 간섭한다고 보면 된다." 



△ 작가와 PD가 회의실에 모여 드라마 속 인물 관계도를 만들고 있다. (사진=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캡처)



- 작가와 PD가 다투는 모습도 드라마 속에 많이 나오던데, 실제로도 그런가?

"방송이 시작 된 후에는 바빠서 못 싸우고 사전에 제작하는 동안에는 치열하게 싸운다. 계속해서 대본이 엎어지고, 아이템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어떤 작가들은 PD가 계속 대본을 고치라고 하니 수정하기 싫어 도망가는 경우도 있다. 그럼 포기하고 작가가 써 놓은 대로 찍는 PD도 있는 반면, 다른 작가를 데려와 고치게 하는 경우도 있다." 


- 방송작가라는 직업의 매력을 꼽는다면  

"TV에는 재미있는 것만 나온다. 그러니 작가들은 늘 재미있는 것을 찾고,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야한다. 일도 자연히 재미있다. 또 경험이 확대된다는 것도 의미있다.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던 분야에 대해 새롭게 배우기도 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평생 자신의 영역 안에서 그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사람도 많은데, 방송작가는 굉장히 큰 세상을 만날 수 있다."  


- 반대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방송작가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어려움이 많다. 흔히 프리랜서를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고 말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다. 일하고 싶을 때 쉬어야하고 쉬고 싶을 때 일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거다. 고정적인 일이 없으니 계속해서 불안함이 있고, 그 불안감은 영혼을 잠식해 그릇된 판단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 말아야 할 작품인 것을 빤히 알면서도 ‘내가 거절하면 다시는 나에게 작품 제의를 안하는 것 아닐까’ 싶어 덜컥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 나를 뽑아줘야만 일을 할 수 있으니 작가는 ‘을’의 입장이 된다는 것이 씁쓸하다."  


- 수입은 어떻게 되나 

"작가별로도 천차만별이다. 유명 작가의 경우 드라마 한 편당 몇 천 만원씩을 번다고 나오는데, 그런 작가는 정말 극소수다. 그래도 메인작가를 맡게 되면 수입이 적지는 않다. 동년배 직장인 급여수준보다 많으면 많지 결코 적지는 않다." 


- 막내작가는 굉장히 급여가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던데 

"일을 하면서 배우는 과정이라는 이유로 급여를 굉장히 적게 준다. 물론 현장에서 배우는 것과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그건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의사, 교사도 현장에서 배우면서 일하는데 유독 방송업계만 임금이 적다. 아마 프리랜서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집단적으로 힘을 갖지 못한 조직이라 고충을 들어줄 통로가 없다. 방송작가협회가 있긴 하지만 막내작가는 가입이 불가하다." 



△ 임선경 방송작가 (사진=이승재 기자)


- 능력 있는 작가는 무엇으로 평가되나

"사람들이 보든 말든 나만의 작품을 하겠다는 생각으로는 방송작가를 할 수 없다. 제한된 전파로 송출되는 방송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줄 의무도 있다.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작가가 능력있는 작가로 평가된다." 


- 방송작가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글을 잘 써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작가와 다른 점이라면 협업이 필수라는 거다. 방송은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여러 사람의 협업이 있어야하는데, 그러려면 설득도 해야하고 상대에게 나의 의견을 맞추기도 해야 한다. 절대 자신의 의견을 꺾지 않는 사람이나 내 글에는 절대 손을 댈 수 없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방송작가로 일하기 어렵다. 또 너무 독특한 사람도 힘들다. 방송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코드를 찾는 감각이 필요하다. 아주 부유하게 살았거나, 외국에서만 살아서 한국 정서를 모른다면 공감 코드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 방송작가 지망생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방송작가는 공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채용 루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라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말 꿈이 있다면 과감하게 행동했으면 한다. ‘무한도전’의 작가를 하고 싶다면 일단 찾아가서 기획안을 내보는 거다. 그렇다고 당장 채용되지는 않겠지만 급하게 사람이 필요할 때 그런 친구들이 생각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꾸준히 방송 모니터도 하고, 글 쓰는 연습도 해야 한다. 일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면서 인상적인 장면이나 말을 메모해 많이 축적해 놓는 것도 중요하다." 


phn09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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