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실패, 수능 망쳤다고 망한 인생 아니야″ 특성화고 출신 선배들의 이색 스토리 [NEWS] 조회수 : 71293

“취업 실패, 수능 망쳤다고 망한 인생 아니야”

특성화고 출신 선배들의 이색 스토리


취업과 진학, 인생에 두 가지의 길이 전부인 줄 아는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기계 전공에서 뮤지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스물 다섯 만학의 나이에 대학 새내기가 된 최찬규 씨. 학창시절 사고뭉치에서 1억원 연봉의 보험왕, 그리고 사장님으로 변신한 김호연 씨.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었던 특성화고 출신 선배들의 다사다난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공고생, 25세에 뮤지션의 길로 돌아서다

최찬규(25) 씨는 중학생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꿈을 펼칠 수 없었다. 결국 부모님의 추천으로 구미전자공고에 입학한 후 음악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악대부 동아리에 가입해 드럼을 맡았다. 최씨에게 동아리 활동은 학교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던 최씨는 고3 때 L사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다. 휴대폰 카메라 외관을 검사하는 일이었다. 방진복을 입고 일하기 때문에 한여름은 물론 겨울에도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힘들었지만 최씨는 이를 악물고 일했다. 부모님 빚을 갚는데 보태기 위해서였다. 최씨는 군 제대 후에도 같은 일을 했고, 총 2,500여만 원을 부모님께 드렸다.

성실하게 일하던 최씨는 어느 날 점심을 먹으며 문득 쳇바퀴 같은 삶에 회의감을 느꼈다. “갑자기 ‘이렇게 살다가 내일 죽으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일에 치여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음악’이 떠오르더라고요.”

당시 가정형편도 나아져 음악공부를 할 수 있게 된 최씨는 퇴사 후 실용음악학원을 다니며 카페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정식으로 음악 이론부터 피아노, 작곡까지 음악에 대해 깊이 배우니까 너무 재밌었어요.”

그렇게 최씨는 1년 동안 음악에 푹 빠져 살았다. 일을 마치고 밤 12시가 넘어 귀가하고도 음악공부는 계속됐다. 최씨의 노력과 열정을 알아본 탓일까. 어머니는 선뜻 대학을 가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음악을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던 최씨에겐 꿈같은 제안이었다. 곧바로 최씨는 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학원 선생님과 대학생 친구들에게 입학 관련 조언을 얻고 수능까지 치른 뒤 대학에 원서를 냈다. 결국 대경대 실용음악과에 만학도 전형으로 합격해 최씨는 스물다섯 나이에 16학번 새내기가 됐다.

대학생활은 만족스러웠다. 최씨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다 보니 1학기 성적은 4.5점 만점에 4.45점을 받아 과 탑을 차지하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 시험지에 한 두줄 끄적이고 잠만 자던 최씨에게 기적 같은 일이었다.

“주위에서 공부하란 말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태어나서 첫 1등이었어요. 너무 기뻤죠.(웃음)”

앞으로 그는 공부를 하면서 꾸준히 음악 작업을 병행해 힙합 레이블 ‘하이라이트 레코즈’에 프로듀서로 들어가는 것이 꿈이다.

“고등학생 땐 취업과 돈이 인생의 목표였는데, 이제 가치관이 변했어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정도면 하고 싶은 것 하고 죽으려고요. (웃음)”




학창시절 사고뭉치에서 최연소 보험왕,지금은 사장님

중2 때까지 강제 전학을 당할 정도로 사고뭉치였던 김호연(31) 씨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전자상거래와 온라인 쇼핑몰 붐이었던 당시 김씨는 대동세무고 전자상거래과에 입학했다. 김씨는 활발한 성격에 회장을 맡으며 학급을 이끌었고, 고교 3년 내내 장학생이었을 정도로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 결과 수시모집으로 건국대 경영학과에 합격, 하지만 입학 전부터 대학생활에 큰 실망감을 느낀 김씨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입학 전 수시 합격생끼리 오티나 정모를 하면서 짧게나마 대학생활을 경험했는데 제가 생각한 대학이 아니더라고요. 의무적으로 학교를 다니는 선배들의 모습에서 배울 점이 없었어요. 차라리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죠.”

군인 집안에다 공군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김 씨는 직업 군인을 하기 위해 아세아항공직업전문학교 비파괴검사과에 입학했다. “일반 학교와 다르다 보니까 직장인, 명문대생, 아저씨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당시 제 나이에선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배웠죠.”

군 입대 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김씨는 증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마침 한창 증권, 주식, 투자 등의 붐이 일던 때였다. 김씨는 각종 증권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며 증권사 취업을 준비했다. 제대 후 보험 일을 하고 있던 어머니는 김씨에게 문득 보험 일을 제안했다. “제 본래 꿈인 사업을 하려면 사람 다루는 일이 먼저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김씨는 어머니의 제안 덕분에 삼성생명에 입사해 컨설턴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보험회사를 5년 다니면서 제 인생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경험했어요.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시야를 넓힐 수 있었죠.”

김씨는 매일 똑같은 요일과 시간대에 간식을 들고 회사들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지만 차츰 그의 노력과 정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고객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1년간 주행거리는 60,000km나 됐다.

그 결과 김씨는 스물여섯의 나이에 ‘최연소 보험왕’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고, 연봉 1억원을 넘기며 생명보험업계의 고소득설계사들의 모임인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클럽에도 이름을 올렸다.

3~4년차가 되자 영업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계약이 들어왔다. 그러던 중 김씨의 본래 꿈인 창업이 떠올랐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김씨는 회사생활과 함께 창업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창업 아이템은 휴대폰 케이스였다.

“휴대폰은 우리 삶에 필수 아이템이고 휴대폰을 내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휴대폰 액세서리 뿐이잖아요. 남녀노소 불문하고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사용하니까 딱이라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김씨는 상권분석을 위해 명동, 홍대, 신촌, 동대문 등 서울지역에만 수십군데를 돌아다녔다. 또 평소 친분이 있는 보험회사의 고객들이 정보를 주고 지인을 소개받아 2015년 3월, 홍대에 매장을 열었다.

“스프링을 살짝 누르면 딱 그 정도만 튀어오르잖아요. 근데 스프링을 최대한 세게 누르면 많이 튀어올라요. 그만큼 저는 힘들고 어려워야 더 높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후배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꿈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꿈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글 구은영 인턴기자 eyg0261@hankyung.com